▲ 유헌규 주식회사 사펨 상무ㆍ마중물 회원
“상식은 18세가 될 때까지 후천적으로 얻은 편견의 집합체이다”라고 엘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그분이야 천재니깐 18세까지라고 하겠지만, 나는 18세가 아닌 50세까지 상식이라는 이름의 편견 속에 살아왔다. 사단법인 마중물의 ‘마중물 세미나’와 이곳에서 토론하는 동료들을 만나기 전까지.

상식에서 식상으로

유신시절, 10.26사태, 광주 민주화운동 등이 내 피 끓는 젊은 시절에 지나갔다. 그때는 군사독재주의를 통한 성장우선주의ㆍ반공주의 등이 주류를 이뤄, 진보니 좌파니 사회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모두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친미성향 보수주의의 득세가 정당화되었던 시절이었다. 이때는 이것이 상식이었다. 경제 성장이 국가는 물론 국민들도 잘 살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부지런한 국민, 저축하는 시민, 싸우면서 건설하는 산업전사가 되어 참고 견뎌라.

나는 소위 그때의 상식이란 것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판단하고, 당시 신문보도나 기성세대의 반공이념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그저 데모 때마다 동료들과 술 마시며 그리 속절없이 보냈다. 공대생들 대부분이 그러했듯, 의식화된 대학생들의 데모에 심정적으로 동의는 하되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은 없으면서 (속으로 그들이 부럽고 멋있고,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선(先)성장 후(後)분배’라는 이때의 상식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후보는 녹색성장ㆍ뉴타운개발ㆍ경제성장ㆍ대운하 건설 등 성장과 관련된 공약을 내걸었고,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집권 후 이명박 정부는 재벌중심의 성장제일주의에 기반 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나 현재 군사독재주의에서 재벌독점주의로 바뀐 것 외엔 별반 다른 게 없지 않은가. 성장의 과실이 누구에게나 고르게 분배되기는커녕 상대적 불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 앞에서 상식은 식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식상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음식, 행동 또는 일이 반복되어 싫증이 나는 것’ 또는 ‘소화불량으로 복통이나 토사 등을 유발하는 병’이다. 기존의 상식은 나에게 식상이 되었다. 이 상식은 싫증을 넘어 복통이나 토사를 유발하고 있다.

식상에서 상식으로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은 상식을 전복하는 행위’라고 언급했다. 토론하는 동료들과 함께 한 상호교육은 내 상식을 전복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선성장 후분배나 마치 자신의 실패가 순전히 자업자득이라는 지배적인 상식, 즉 식상을 아는 행위이고 실천인 것이다.

식상에서 진정한 상식을 찾는 것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정의하고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즉 알린스키가 역설한 “평등ㆍ정의ㆍ평화ㆍ협력을 통한 완전한 교육의 기회, 건강하고 유용하고 실업자 없는 고용, 그리고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주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상황의 창조자라는 민주주의적 이상을 우리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시민들이 배우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찾는 것이다. 마치 내가 토론하는 동료들과 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시민들이 진지하게 정열적으로 식상과 싸운다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상식을 가장한 식상을 폭로하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는 실천의 과정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또다시 선거철이 다가 오고 있다. 이 열린 공간이 식상에서 상식으로 전환되는 축제이길 상상해본다. 식상을 가장한 상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만든 상식으로 축사가 울려 퍼지길!

※ ‘마중물칼럼’은 사단법인 ‘마중물’ 회원들이 ‘상식의 전복과 정치의 회복’을 주제로 토론하고 작성한 칼럼입니다. 격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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