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부평구청소년수련관 농구동아리 ‘칸’
제11회 전국유소년농구대회 준우승

▲ 농구동아리 ‘칸’ 회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요한ㆍ배성훈ㆍ김재준ㆍ김성진ㆍ정성관ㆍ차경환군.
성관(16·구산중)이는 방에 한 시간째 앉아 있다. 책상에 펴놓은 참고서 대신, 벽에 걸린 시계만 수도 없이 쳐다봤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야속한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밖에서 엄마 목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것이 확실하다. 바로 지금, 나가야한다.

방에서 현관까지 거리가 천리처럼 느껴졌다. 번개처럼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성관이 도착한 곳은 삼산체육관 야외농구장. 팀 주장인 경환(16·진산중)과 친구들이 반갑게 맞는다.

이들은 부평구청소년수련관(관장 유준수ㆍ이하 청소년수련관) 소속 농구동아리 ‘칸’ 회원들. 칸은 지난 7월 20~22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린 제11회 국민생활체육 전국유소년농구대회(국민생활체육전국농구연합회 주최)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8월 10일, 이 대회에서 주전 선수로 뛴 6명을 청소년수련관에서 만났다.

농구대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때 ‘○○농구교실’을 다니면서 농구공을 잡기 시작했다. 김재준(16ㆍ삼산중)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프로농구 경기를 보고 농구교실에 들어갔다. 한 선수가 덩크슛을 하는 장면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던 것. “이전에 농구 경기는 텔레비전으로도 본 적이 없었어요. 직접 경기를 보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성훈(16ㆍ삼산중)군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엄마가 키 크는 데 농구가 좋다며 해볼 것을 권유했다. 비록 처음엔 억지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배우다보니 점점 재미가 붙었다.

이들은 농구교실에서 만난 친구들과 농구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연습했다. 비가 오는 날은 고속도로 중동아이시(IC) 아래에 설치된 농구대에 모였다. 농구는 운동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모르는 아이들과 팀을 짜 경기를 하는 동안 친구도 늘었다. 자연스럽게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던 중 경환군이 청소년수련관에서 동아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팀원들에게 동아리 등록을 제안했다. 뭔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등록했다.

경기 연습 위해 ‘탈출’하기도

현재 칸에는 중ㆍ고등학생 30여명이 소속돼있다. 회원들은 농구선수를 꿈꾸기보다는 그저 농구가 좋아서 모인 이들이다. 청소년수련관 소속으로는 처음 전국유소년농구대회(7월 20~22일 개최)에 참가해 준우승 트로피를 따냈다. 대회 기준에 맞게 중학생으로만 9명이 팀을 꾸려 경기에 나갔다.

경기 직전, 학교는 대부분 기말고사가 한창이었다. 경기냐 성적이냐. 둘 중 선택을 해야 했다. 성관군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시험기간에도 연습을 했다.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다 공부가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이 기간만큼은 시험공부를 하길 바랐다. 하지만 대회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농구공 튀기듯 쿵쿵 뛰었다. 급기야 성관처럼 부모님 몰래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연습하고 들어가면 혼이 났죠. 빨리 씻으라며 야단을 치셨지만, 속으론 저를 이해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전국에서 21개 팀이 대회에 참가했다. 경기 당일 대진표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예전에 한 경기에서 크게 패한 적 있는 팀과 본선 첫 경기에서 맞붙게 된 것. 심지어 주전으로 뛰어야 할 임요한(16ㆍ부천 동중)군은 전날 고기 먹은 것이 탈이 나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서니 아픈 것이 사라졌다. 선수 모두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갔다. 결과는 승(勝). 자신감이 붙었다. 살얼음 같은 토너먼트 승부였기에 최고의 선수들로만 구성해 대회를 치렀다. 애초 목표인 4강을 훌쩍 넘어 결선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준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김성진(16ㆍ구산중)군은 우수선수상까지 받았다. 우승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없었다.

맘껏 농구할 수 있는 공간 절실

이들은 일주일에 2~3일은 모여 농구를 한다. 각자에게 농구는 단순한 즐거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훈군이 “친한 친구들이 생겨서 좋아요. 학교에서 농구 수행평가 점수도 잘 나오고요”라고 하자, 성관군은 “다른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친구들이 인정해주니 기분이 좋죠”라고 했다.

성진군은 “예전에는 농구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잘 한다 잘 한다’ 하니까, ‘내가 정말 잘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요한군은 “또래끼리 모여서 운동도 하고 대회도 나가서 상도 타니까 성취감도 있고 좋아요”라고 거들었다.

재준군은 농구를 하면서 말이 많아졌단다. “예전엔 친구들 사이에서 얘기를 거의 듣는 편이었죠. 지금은 말할 기회가 많이 생겨서인지 고등학생 형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눠요” 경환군은 “전 잘 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적어도 농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초체력도 좋아져서 다른 운동할 때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라며 “운동을 잘 하는 친구 중에 왕따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농구를 맘껏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흙 운동장은 농구를 하기엔 불편하고, 삼산체육관은 어른들이 많아 우리가 낄 자리가 없어요. 청소년수련관 동아리로 등록을 하긴 했지만 어른들과 함께 사용해야하고, 농구동아리에 특별한 지원이 아직까진 없어요”

경환군은 “친구들 대부분 공부 아니면 컴퓨터게임을 해요. 농구가 참 재밌는 운동인데 이 재미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농구장이 많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농구하는 친구들도 많아지지 않을까요?”라며 “한 시간이라도 우리 팀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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