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변호사

인천투데이|전화 한 통이 왔다. 네이버가 연결해 준단다. 아, 누군가 네이버에서 ‘인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검색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인천 민변 총무인 필자는 반갑게 받았다. 민변을 찾아서 연락을 해준 것이니 얼마나 반가운가.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는데 교통사고가 났다. 자동차가 나를 밀어버려서 갈비뼈 4개가 나갔다.” 여기까지는 일반 법률상담인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재밌는 말을 시작했다.

“보험사 직원 말이, 대기업 회장이 사주해서 나를 죽이려고 했다고 한다. 살인미수다.” “내가 작년에 미국에 살 때, 북한 마약과 위조지폐 거래하는 사람들을 신고했다가 죽을 뻔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내 친구 아버지가 서울법대 1회 졸업생이고, 5개 국어로 법을 강의하고, 유엔에서 판사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여기는 그런 일 상담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다른 변호사 찾아보라고 나름 정중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말 폭탄이 돌아왔다.

“너네 민변이지. 아 이 쓰레기 XX들이. 너희들 정체가 드러났다. 내가 너희들 정체를 알아보려고 전화했다. 촛불시위한 사기꾼 XX들, 문재인이 하고 너네는 다 쓰레기라는 게 발각된거야 이 XX들아."

다시 한 번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전화 끊었더니 계속 전화를 한다. 수신차단 했는데도 계속 왔다. 정말 대단한 정성이다. 그리고 억울했다. 난 사기꾼도 아니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아무런 친분이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 때 특정 커뮤니티에서 피해자들에게 자행한 혐오 표현을 잊을 수가 없다.

코로나19 초기에 특정 국가와 인종, 지역이 매도당한 적도 있다. 아직도 일부 종교 우파세력은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 기간 중에 우리는 또 많은 혐오표현을 들어야 했다. 우리 정치는 ‘혐오 정치’를 발판삼아 지지 ‘혐오자 세력’을 결집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혐오표현은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성별, 장애, 종교 또는 성적 취향 등과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악의나 의도적인 폄하, 경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련의 의사표시로 정의할 수 있다.

혐오표현도 표현이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있겠지만, 이러한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감을 준다면 한국에선 규제 대상이 된다. 그러나 죄가 되고 말고를 떠나 ‘혐오’ 자체가 ‘폭력’이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매우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주변을 돌아봐도, 스마트폰의 유튜브를 키고, 단톡방을 들어가도, 누군가에 대한 이유 없는 폄하와 경멸, 나아가서 인륜적으로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수준의 표현들이 얼마나 많은 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을 생산하고 유통해 권세를 누리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표현으로 고통 받고, 때로는 생을 마감하는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B규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제20조 제2항은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해 금지된다’고 규정해 일정 영역의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증오의 고취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법이 없더라도 성숙한 사회는 ‘혐오에 대한 반대를 공고히 하는 연대’를 형성해 발전한다. 혐오표현은 폭력이다. 폭력에 반대하자. 일상적으로 들리는 혐오에 동조하지 말자. 지인이 혐오표현을 한다면 공감하지 않음을 표시하자.

그래도 전화한 사람의 이야기는 더 들어볼 걸 그랬다. 더 재밌는 말을 많이 해줬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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