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매년 인천에서 디아스포라 영화제(DIAFF, Diaspora Film Festival)가 열린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5월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이 위치한 신포동~동인천 일대에서 개최됐다.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영화제 중 하나다. 매년 올라오는 프로그램의 다양함도 그렇거니와 상영작의 만족도가 높은데, 이로써 주최측에서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년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는 퀴어성을 질병으로 여겨 치료 대상으로 규정했던 시기를 다룬 영화 ‘큐어드: 질병에서 자긍심으로’, 혐한 정서가 깔려있는 일본 한복판에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삶을 꾸려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존재했음에도 느닷없이 해외 입양됐던 어머니의 삶을 추적하는 단편 영화 ‘자장가를 불러 줘’ 등을 관람했다.

‘디아스포라’는 좁게는 분단과 이산 또는 집합한 것들의 흩어짐이라는 의미지만, 위 여러 영화의 요약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 의미는 더 확장해서 받아들여진다.

디아스포라는 단일한 것의 이산, 더 정확하게는 단일하다고 믿었던 정체성의 허구를 받아들이는 일에 더 가깝다. 젠더 퀴어를 다루는 영화가 디아스포라 상영작에 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별 이분법에 근거한 분류 체계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간성(intersex)와 같은 사례가 존재함에도 이분법적인 성별로 인간을 규정하고자 하는 관습에 기대어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규정한 체계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의 삶이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일부를 ‘보편’으로 간주하는 관습적 지칭에 의해 ‘그밖’의 삶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듯 착시를 일으키고 이는 ‘일반’ 이외의 존재를 부정‧혐오‧삭제하는 방식으로도 현현된다.

따라서 디아스포라의 개념은 매우 구성적이며 그런 점에서 퀴어적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어떠한 교차도 없이 단일성에 기댄 정체성의 구현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젠더 퀴어 뿐만 아니라, 여성, 재일조선인, 교포, 입양아 등 같은 개개인의 정체화는 단순히 개인의 ‘지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원리적인 차원에서 구성됨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디아스포라적 개념으로 인간을 성찰한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를 지속시켜나감에 어떤 다양성에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하는지를 묻게 만든다.특히 한국처럼 일제 강점기, 전쟁, 분단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양상이 한층 더 복잡하다. 외세의 억압, 내부적 분열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내외적으로 여러 결의 억압, 학살, 이념적 살상의 역사가 놓여있기에 그렇다. 상처의 경험을 가로지르는 시간 위에서 형성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기실 단일하지 않다.

이 모든 시간을 경유한 이들(또는 그들의 자녀)을 지칭하는 말이 여러 가지라는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분단 체제 이전과 이후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의 한국인’ 또는 ‘조선인민공화국 소속의 조선인’ 뿐만 아니라, 분단 이전의 한반도를 국적으로 삼은 이주민의 경우 ‘조선인’으로 구분되는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올해 상영작 중 하나인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들의 삶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의 부모는 모두 남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 오사카에 거주했다.

영화는 부모 중 특히 어머니 강정희의 역사를 따라간다. 강정희는 오사카에 머물렀던 조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오사카에서 보냈다. 일본 패망이 가까워지던 시기 일본이 위험해지자 강정희는 제주로 피란간다.

그러나 해방 직후 제주 4.3항쟁의 참상을 목격한 강정희는 동생들을 데리고 오사카로 밀항한다. 강정희는 오사카에서 남한 출신이자 조총련에 헌신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해 삼남일녀를 둔다. 강정희의 일가친척과 강정희의 자녀 중 삼남은 북송했으며 막내 양영희 만 남아 오사카에서 부모와 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에 바치는 선물로 선발된 재일조선인 장남은 조울증에 시달리다 운명을 달리했고, 부모는 한평생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부쳤으나 노쇠해 그마저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제주 4.3을 잘 몰랐던 시절 양영희는 부모가 제주를 그리워했음에도 좀처럼 남한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지 못하는 것을 오랜 시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삶이 부모의 그것과 뒤섞여있음을 확인하면서 부모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양영희는 오사카에서 재일조선인 자녀로 살면서 북한식 교육을 받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하고 큰 오빠의 죽음 이후 북한에 대한 미움과 더불어 어째서 부모가 자식을 북한으로 보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 강정희가 마침내 제주 4.3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하면서 남한 정부가 민간인까지도 학살하게 지시를 내린 사실과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책임을 묵인했는지 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은 강정희가 치매에 걸려 더이상 4.3에 대해 명확한 진술을 할 수 없게 되는 시점까지 지속되고, 배우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발화자로 등장시키고 있으며, 이 모든 추적의 과정이 곧 영화로 구성된다.

이것은 강정희 일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인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강정희의 삶이 너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삶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경험하고 있다. 때문에 역사의식에 기반한 정체성의 구성은 세대차에 따라 단절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은 이전부터 연속되는 흐름 속에서 각 사건으로부터 간섭받고 영향 받는 맥락이 달라짐에 따라 각 사건의 비중이 달리 구성되고 해석되는 것에 가깝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반도의 역사를 살아내는 인간으로서 삶을 이끌고 있는 한,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부모가 북조선 사람 또는 재일조선인이 아니라도, ‘나’는 이 모든 것과 무관한 ‘남한인’이라는 단일한 성질을 지닐 수 없다.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내 부모와 조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과 동시대성을 가진 사람이고, 마찬가지로 작금의 세대로 거슬러 내려오면서 그들의 자녀와 나 또한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나’를 개념화하는 일은 부분적으로는 필연적인 디아스포라적 성격을 지닌다.

나아가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일은 오늘날 ‘자기’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젠더, 인종, 노약자 등의 혐오를 주지하고 그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노력은 자신이 놓여 있는 사회적 층위가 ‘일반-보편’으로 고정화돼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상황에 따라 약자화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과 맞닿아있다.

즉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고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타인과 세계의 수많은 접점으로 구성돼 있는 유동적인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조건이다.

자신이 아는 것과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언제나 삶이란 ‘나의 삶’이라는 등(燈) 하나를 들고 끝없이 이어진 어두운 길을 더듬어 나가는 것일진대 그 주변에서 마주치는 존재를 겪으면서 모르는 세계가 여전히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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