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백기완 선생이 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무슨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심문을 받던 한 사내가 친구의 아내를 가해해야 죄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는데, 양심상 그렇게 하지 못한 채 고초를 겪으며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나중에 사내의 이야기를 들어본 즉,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어찌된 일인지 책과 글을 읽지 않아도 세상사가 훤히 보이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생을 살면서 나의 지각을 뛰어넘을 기회를 얻는 ‘별의 순간’은 한 번쯤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기회를 무심히 흘려보낼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라는 함정에 빠지더라도 사람들은 대개 경험을 통해 판단을 하고, 그렇게 분별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에 과거를 소환한다.

논문 표절 논란이 유행처럼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관례’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고,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 표절의 기준을 따져보곤 했다.

과거라고 해서 표절을 신경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을 규정하는 큰 원칙이 바뀐 적은 없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이 공들여 만든 생각을 몰래 갖다 쓰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원칙은 같다.

표절을 하는 과정에 의도성이 있었는가 하는 점을 따지는 건 사실상 의미가 없다. 본인이 아니고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절률을 정량화 시키는 방법으로 시스템이 개발됐고 기준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세분화된 기준을 살펴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나의 언어로 표현된 문장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 만든 생각의 구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건 표절에 해당한다. 표현을 달리했을 뿐 남의 문장을 고쳐 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용표시를 명확하게 했다고 해도 간접이든 직접이든 인용한 문장을 줄줄이 엮어 만든 문장 역시 표절에 해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고민해서 밝힌 것들을 마치 나의 생각인 것처럼 정리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기 내부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놓은 논문은 남의 것을 몰래 모방해서 발표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절의 기준이 이처럼 엄격하게 강화된 것은 연구자들이 연구 능력은 물론, 윤리성까지 갖춰야 한다는 세론이 상식으로 자리를 잡게 됐기 때문이다.

연구윤리라는 면에서 자기표절은 여전히 설왕설래하는 모양새다. 과거에 자신이 썼던 글을 여러 지면에 재사용하는 자기표절은 중복게재나 논문 쪼개기 문제와 연결돼서 언급되곤 한다.

자기표절이 허용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여전히 이론은 많다. 하지만 이것 또한 기준은 명확하다. 과거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숙고해 내놓지 못했다면, 그건 표절이 될 수밖에 없다. 가끔 예전에 발표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보고 있으면 민망할 때가 많다. 그만큼 자기표절은 습관처럼 반복되는 잘못 중 하나이다.

표절 문제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필이다. 표절은 그래도 검증이 가능한데 대필은 확인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저자가 어느 곳에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필은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행된다.

가령 A라는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은 한국어 수준이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렵게 과정을 끝냈다고 해도 학위논문을 써야 본국에 돌아가서 취직을 할 수 있다. 지도를 맡은 B교수는 한국인 학생인 C를 불러 ‘도와주라’고 지시한다. 한국어 구사 능력이 없는 유학생을 도와준다는 건 대신 쓰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도 대필이란 단어를 언급하진 않는다.

이런 경우도 있다. 여러 사람의 원고를 모아서 책을 출판해야 하는데 집필하기로 했던 필자가 엉망으로 쓴 원고를 내놓은 후, 외국으로 장기 출국을 해버린 채 연락을 끊는다. 알아서 처리하라는 의미다. 이 과정에도 대필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도 수백 만 원에 학위논문이 거래되는 사례는 있었다. 이 경우는 금전이 오가기 때문에 발각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진행되는 대필이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권력 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표절이나 대필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명예나 지위를 향한 욕망도 한몫을 했을 테고, 연구자가 양산되고 보니 글이 생활비를 버는 수단일 수밖에 없는 연구자 간의 경쟁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때론 절필도 필요하다. 잠시 휴지기를 겪으면 관행을 없앨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세태를 보니 이것이 비단 연구자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 연령이 계속 낮아지면서 중‧고등학생까지 표절과 대필 논란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들에게 잘못된 경험을 겪게 해선 안 된다. 표절이나 대필이나 모두 범죄 행위라는 것을 기억에 남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연구자들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조력자도, 본보기가 되는 것도 결국 연구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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