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윤나현 서울시립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장

인천투데이|드디어 2년여 만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멈췄던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새다. 닫혔던 교문이 열리고 이제야 학교도 활기를 조금씩 찾는 듯하다. 성평등 교육 현장도 외부 강사의 수업 재개와 체험관 정상 운영에 따라 교육 의뢰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등교해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체험학습에 나선 청소년들에게서 성평등 교육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뿜어져 나온다. “오늘 무슨 교육하는지 아시나요” “성교육이요” “재밌을 것 같아요” 들뜬 목소리가 마스크를 뚫고 나와 교실과 교육 현장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다른 현실은 무겁고 무섭기까지 하다. 지난주 한 학교의 성교육 출강 수업이 끝나고 옆 교실에서 나온 동료가 깊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성관계와 성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그날 수업은 ‘평등한 관계 맺기와 성적 동의’가 주제였는데, 수업 내내 불성실한 태도와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던 한 학생의 발언이 위험 수준이었다. 동의를 위해 필요한 것에 관한 질문에 “목을 조르면 된다”고 말한 것이다. 발언의 문제점을 짚으며 ‘평등’과 ‘동의’를 다시 강조했지만, 받아들여졌을지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가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는 것에 어떠한 이견도 없을 것이다.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영업 제한, 사적 모임 제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백신 접종 등 모두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은 생애 처음 재택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온라인 학습은 일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 인터넷 중독 또는 스마트폰의 부작용으로 일부 양육자들은 자녀의 스마트폰 구입을 유예하거나 사용시간을 제한하기도 했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 교육을 나가면 스마트폰이 없는 학생도 꽤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학습을 위해 지난 2년 간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은 청소년들에게 필수품이 됐다.

낯설고 급격한 변화에도 청소년은 빠르게 적응했다. 온라인 학습뿐 아니라, 전반적인 외부 활동이 위축된 탓에 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지금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낯선 사람과 거리낌 없이 대화한다. 24시간 몸에서 떨어질 새 없는 스마트폰은 이제 오장육부와 더불어 장기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온라인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폭력 피해(성적 모욕감을 주는 행위, 성관계 시도, 스토킹 등)가 발생한 장소 중 가장 높은 비율은 온라인 공간(44.7%)이다.

여학생의 경우, 2018년 24.2%에서 2년 새 58.4%로 증가하고 남학생의 온라인 성폭력 피해 비율도 8.3%에서 19.8%로 두 배 이상 늘어,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

이는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이 안전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문제,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차별과 혐오, 폭력적 문화 등이 온라인으로 확대된 것이다.

2년 전인 2020년 초 세상에 알려지게 된 ‘텔레그램 N번방’이 대표적이다. 일명 ‘노예’라고 지칭하며 피해자들에게 성착취 영상 제작을 강요하고 돈을 벌었던 끔찍한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10대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2020년 검거된 디지털 성범죄자 430명의 71.4%가 10대와 20대였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현실을 반영해 교사의 성평등 의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21년 2월 교원자격검정령이 개정됐고, 올해 8월 졸업자부터 성인지 교육을 필수로 이수해야만 교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도 6월 1일 실시될 교육감 선거에 성평등 교육 관련 정책 논의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광역시‧도 17곳의 교육감 후보 58명(5월 19일 기준)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가운데, 공론장을 만들고 주도해야 할 후보들은 불과 2년 만에 ‘텔레그램 N번방’을 잊었을까. “목을 조르면 된다”는 발언에 교육감들은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는가.

정치인들이 책임을 방기하고 학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성교육을 하는 사이 한국 사회에는 ‘텔레그램 N번방’이 탄생했다. 그리고 온라인에선 다른 위험과 폭력이 재생산되고 있음이 감지되기도 한다. 부디 N사 초록색 검색 창에 ‘길거리’ 혹은 ‘일반인’을 이미지 검색해보길 추천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대책은 무엇인지 후보 중 누구라도 대답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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