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를 괴롭힌다. ‘그’의 정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연암’을 대신한 말로 보기 어렵다. ‘연암’을 대신했다면 ‘연암의 문학론과 그의 작품 세계’라고 했을 것이다.

이보다 간결하고 나은 표현은 ‘연암의 문학론과 작품 세계’다. 그럼에도 굳이 ‘그’를 넣은 이유는 뭔가 장식을 하면 나아 보일 거라는 그릇된 생각일 수도, 잘못 들인 습관일 수도 있다.

관형사는 다음에 오는 말을 꾸며 준다. ‘그 신문 이리 줘’ ‘그 사건의 전말은’에서 ‘그’가 그런 구실을 한다. ‘그’ 외에 ‘이’, ‘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이’, ‘저’는 앞에 나왔거나 듣는 이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대상을 대신하는 역할도 한다. 이때는 대명사다. ‘그 같은 사람’ ‘지금 가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기다리는 게 좋겠다’의 ‘그’가 그렇게 사용됐다.

그런데 ‘연암의 문학론과 그 작품 세계’에서 ‘그’는 이도 저도 아니다. 앞의 ‘연암’을 대신한다거나 뒤의 ‘작품’을 꾸민다고 하기 어렵다. 마치 영어의 정관사 ‘the’처럼 쓰였다.

영어 ‘The dolphin is an intelligent animal’을 우리말로 옮기면 ‘돌고래는 영리한 동물이다’가 된다. 이때 굳이 ‘the dolphin’을 ‘그 돌고래’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인 사물을 가리킬 때 우리말 ‘그’에 해당할 수 있는 ‘the’를 쓴다. ‘He takes a walk in the park every morning’이 문장은 해석하면 ‘그는 매일 아침 공원에서 산책한다’이다. ‘그 공원’이 아니라 그냥 ‘공원’이다. 우리말에서는 “창문 좀 열어 주실래요?”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Would you please open the window?”라고 한다. ‘the window’다.

좋지 않은 번역물에서는 정관사 ‘the’를 꼬박꼬박 ‘그’로 옮겨 놓는다. 표기만 한글일 뿐 우리말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번역물의 영향인지 보도 문장에서도 이런 예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과 기호는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가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그 수요가 촉발될 수 있다” “이집트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상수도사업 원가 분석 용역을 발주해 그 결과를 받아본 결과 20년간 시가 직영할 경우 1782억 원이 소요된다”

이 예문에 쓰인 ‘그’는 모두 불필요하다. 있어서 오히려 어색하다. 다음에 오는 말을 가리키는 ‘그’이거나, 앞에 나온 말을 대신하는 상황이 아닐 때 쓰인 ‘그’는 빼야 한다.

/이경우 한국어문기자협회장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과방송’ 2012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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