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돈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4일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8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이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제목만 보면 현행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과정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 브로커의 개입을 방지해 이주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대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연실색할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우선, 이 대책을 이해하려면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알아야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허가를 발급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고용허가를 발급해주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원칙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금지돼있으며, 특별한 사유 즉, 회사의 도산이나 휴ㆍ폐업, 근로기준법 위반, 폭행, 상해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 제한적으로 회사를 변경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유를 이주노동자가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한국의 법체계나 물정에 어두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서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 동안 새로운 사업장을 찾아 계약을 체결해야한다. 그 기간을 넘기면 노동자들의 체류비자는 취소 되고,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미등록체류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이 너무 잦고, 그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고 있다며 사업장 변경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하는 대신, 사업주에게 구직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명단을 제공해 알선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이주노동자들은 구직기간 3개월 안에 고용센터로부터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구인업체의 명단을 받아 직장을 찾고 계약을 해왔다.

고용노동부의 대책에 따르면, 8월 1일부터 이주노동자들은 이 3개월 동안 가만히 앉아서 사업주가 자신을 선택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업주의 채용요구를 수차례 거부했을 경우, 즉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을 거부했다고 판단될 경우, 그 노동자에 대해 2주 동안 알선을 중단한다는 내용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원천적으로 제한돼온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완전히 가로막는 부당한 처사이며 이주노동자를 더욱 사업주에게 종속시키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이 조치에 대해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근거와 논리 모두 추측에 불과하거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장된 논리라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는 구인사업장 명단을 이주노동자에게 주면 그것이 브로커들에게 유출돼 사업장 변경 과정에 브로커가 끼어든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사례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브로커 개입 등의 불법사례는 단속ㆍ처벌의 대상으로 신고가 잘 이뤄지지 않고, 통계조사 또는 행정통계에 잡히지 않아 전체적인 규모 추산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그 피해와 관련된 추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책을 수립하려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리고 대책의 효과를 가늠하려면 대책 시행 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현재 문제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대책이 시행된 후 그 효과와 부작용을 가늠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도나 정책을 수립하는 기초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일의 앞뒤, 선후도 없이 성급하고 독단적으로 대책을 시행하려고만 하고 있다. 단지, 이번 대책의 진짜 목적인 사업주의 요구에 따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억제할 뿐 아니라 순종적이고 유순한 노동력으로 이주노동자를 길들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인해 이주노동자가 받게 될 피해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이 돼 생각해보자. 자신의 문제를 어렵게 호소해서 사업장을 겨우 변경하게 된 이주노동자가 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사업장을 찾아야한다. 그래서 고용센터에 찾아갔더니, 지금 가지고 있는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말고, 집에서 사업주의 연락을 기다리라고 안내한다.

사업주의 연락이 왔을 때 ‘합리적인 이유’없이 채용을 거부하면 2주 동안 사업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안내도 함께 한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3개월 안에 새로운 사업장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으면 비자가 취소된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러고 보니 고용센터에서는 ‘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사업주에게 연락이 왔는데 채용을 거절했다가는 2주 동안 연락을 못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잘못하다가는 전화 5통이면 3개월이 그냥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연락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피해를 생각해보았을 때, 전화가 오면 얼른 일을 하겠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는 매우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직업선택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려 할 것이다.

물론 이 대책의 다른 부작용과 문제점이 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을 포기하게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까?

이미 전국의 이주노동자와 인권단체들은 이번 대책을 폐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존엄한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키는 부정한 권력에 대한 항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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