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문재인 정권은 ‘나중에 정권’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성평등 정책도 성소수자 인권 보장도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 반영도 모두 나중으로 미뤘다. 그가 말한 “나중에”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오지 않았고 문재인 정권은 끝내 ‘나중에 정권’으로 남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은 반드시 필요한 인권 관련 이슈도 논쟁이 있으면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다수의 여론을 지켜보며 소수를 외면할 뿐이었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면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표어를 내걸고도 어느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 당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포함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져야 하는 명확한 가치와 강한 실행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많이 하면서도 정치인이 그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망각했다.

사실 ‘사회적 합의’라는 표현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국민여론은 찬성 36%, 반대 47%였지만 자신들이 가진 180석을 이용해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반면 차별금지법은 찬성 57%, 반대 29%여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한국갤럽, 2022년 5월 6일).

여론에 의해서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이슈들(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기반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사형제 폐지와 같은 이슈들)은 일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큰 변화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웠는지 혹은 그 변화의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버거웠는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변화를 줘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임기 중 가장 적극적으로 했던 것은 검찰 개혁과 부동산 정책으로 두 가지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그런 방식으로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패했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도 충분히 끔찍한 세상이 더욱더 최악으로 나빠질 것을 막을 수 있는(혹은 속도를 최대한 늦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정권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정치제도 개혁 등 체제 전환으로 우리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엄청나게 높았던 대통령 지지율과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180석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은 어떠할까. “구조적 차별은 없다”고 공언하면서, 인수위원회 구성과 내각 구성으로 스스로 구조적인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자가당착 정권’이다. 여성과 장애인에게 대놓고 “이곳에 너희들의 자리는 없어”라고 말하는 듯 한 구조적 차별을 몸소 보여주는 기만적인 행태를 보인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언행으로 ‘표몰이’를 하는 정권이 당명을 ‘국민의힘’이라고 사용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생각하는 국민은 누구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에 여성과 장애인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발언으로 계속 확인되고 있다.

시험주의 수준의 ‘공정’ 담론으로 끊임없는 배제와 차별을 발생하게 하는 구조의 문제를 숨기고 모든 것을 개인의 노력과 실력의 문제로 만들며 공고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납작하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서른다섯 번 사용했다. 반면 ‘평등’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자유는 차별, 억압, 속박, 폭력을 당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차별과 평등을 모르는 사람이 자유를 알 수 없다. 그가 강조한 자유가 누구의 자유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나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습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충분한 혹은 과도한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더 확장해야 번영, 풍요, 경제적 성장이 온다는 자유에 대한 그의 인식은 심각하게 자본가의 입장, 권력자의 입장이다. 자본가들이 아무런 제지받지 않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는 게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제, 차별, 억압, 속박하고 폭력적으로 대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고 비문명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이고 국가에게 그 역할을 위임한 것이다.

그 누구도 배제, 차별, 억압, 속박, 폭력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게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유의 확대이다.

자본가들을 귀찮게 하는 규제를 풀어줄 뿐 노동자들의 삶을 돌보지 않으며, 기후 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원전에 투자해 모두의 생존을 위협에 처하게 하며,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시대에도 평등과 분배가 아닌 경쟁과 성장을 말하는 윤석열 정권은 시작부터 우려스럽다.

정치의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다. 정치가 우리를 위해 스스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선거제도 변화부터 체제 전환까지 직접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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