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탑밴드 출연 블루니어마더

17년간 직장생활 병행하며 인천지역에서 활동
작곡가 유영석 “순수한 열정 지닌 밴드” 극찬

어느 토요일 밤, 무심하게 채널을 바꾸던 손이 갑자기 멈췄다. 화면 속에서 웬 중년 남성들이 기타를 메고 나와 노래를 한다. 게다가 ‘록’이다.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 밴드는 앳되고 앳된 인디밴드 틈에서 16강까지 올랐다. 슬그머니 방 한 구석에 놓인 기타에 눈길이 갔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았다. 줄도 갈았다. 이제 토요일 밤이면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타 줄을 튕긴다.

직장인 밴드 ‘블루니어마더(Blue near Mother)’ 팬카페 게시판에 한 회원이 올린 글을 재구성해보았다. 블루니어마더는 1996년 결성돼 17년 동안 인천에서 활동해 온 밴드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재훈(기타)씨와 한준희(베이스)씨가 중심이 돼 팀을 만들었다.

밴드 좀 한다는 이들, 인천으로 모여들던 시절

▲ 블루니어마더 밴드. 왼쪽부터 한준희(기타)ㆍ서종수(드럼)ㆍ이재훈(베이스)ㆍ문지성(보컬)씨.
당시 인천은 전국에서 ‘밴드 좀 한다’는 이들이 모여드는 록의 중심지였다. 재훈씨와 준희씨는 록이 번성한 1990년대 초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각각 자연스럽게 밴드를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 ‘작은 신화’라는 밴드를 만들어 축제 때 공연을 했어요. 아, 중학교 때는 통기타 동아리 ‘부흥로타리’에서 ‘부평시장 순대골목’이라는 노래도 직접 만들었죠. 한 번은 학교 그만두고 밴드 하겠다고 부모님한테 말했다가 혼난 적도 있어요. 하하” 친근한 인상의 준희씨는 당시 또래 가운데 일렉기타 실력이 뛰어났다. 이런 그를 눈여겨 본 재훈씨가 함께 팀을 꾸리자고 제안했다.

“군대에 있을 때, 앞으로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멋진 ‘슈퍼밴드’를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준희에게 밴드를 같이 해보자는 편지를 썼어요” 편지를 받은 준희씨는 ‘새는 비를 맞아도 노래를 한다’는 글귀에 감동했다. 밴드를 할지 말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제대 후 두 사람은 바로 아르바이트에 뛰어들었다. 신발공장과 맥주집에서 일을 하며 연습실 보증금을 모았다. 경인전철 도원역 근처 월세 13만원짜리 지하 연습실에서 블루니어마더의 역사가 시작됐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음악을 했어요. 밴드 이외에 다른 삶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 블루니어마더라는 이름은 재훈씨가 지었다. “‘엄마와 가까운 파란색’이란 뜻이에요. 좋아하는 만화책 제목에서 따왔는데, 당시에는 추상적인 이름이 유행이었어요”

인천과 홍대를 오가며 떡볶이 먹을 시간도 없이 공연을 했다. 주말엔 하루에 서너 번 무대에 서기도 했다.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은 진정 행복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멤버 간 음악성 차이로 인한 갈등보다 더 큰 문제는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1999년까지 세 차례 위기를 겪었다. 그후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밴드 활동과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음악이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먼 곳에서 빛나는 별이 아닌, 머리 위에서 비추는 뜨거운 태양과 같은 것이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2002년, 재훈씨와 준희씨는 새 멤버를 모았다. 몇 차례 멤버 교체를 겪으면서 2005년에 문지성(보컬)씨가, 2008년 서종수(드럼)씨가 들어와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재결성 이후 블루니어마더는 활동을 쉰 적이 없다.

한국방송 ‘탑밴드’ 16강 진출, 유명세 타면서 개인 삶에도 변화

▲ 지난해 ‘탑밴드’에 출연해 예선을 치르는 장면.<사진출처ㆍ한국방송 탑밴드 게시판>
지난해 한국방송(KBS)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밴드’에 출연한 것은 이들에게 큰 사건이었다. 당시 기획사 사장이 출연을 권했다. 멤버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지성씨와 재훈씨는 록밴드로서 서바이벌 경쟁을 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종수씨와 준희씨는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다. 결국 신청서를 제출하고 예심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지성씨가 교통사고로 코뼈가 부러진 것.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우선 노래를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준희씨가 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 섰다. 떨리는 첫 무대. 작곡가 유영석은 “음악이라는 거대한 것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순수한 열정을 가졌다고 봐요. 특히 기타 치는 분의 음성에서 한까지 서려있는 걸 느꼈습니다”라는 극찬을 했다. 지성씨는 곧 건강을 회복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16강까지 오르는 동안 이들의 무대는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삼십대 후반의 직장인들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긴 시간 동안 블루니어마더라는 이름을 이어온 열정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준희씨가 방송에서 한 “저희는 음악을 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 것뿐입니다”라는 말은 많은 직장인들의 가슴에 울림을 남겼다.

팬카페 회원 수는 이전에 비해 네 배로 늘어났고, 게시판에는 ‘방 한 쪽 장식품이 돼버린 기타를 다시 꺼내 들었다’ ‘록음악과 인디밴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년 밴드 응원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왔다.

방송이 끝난 후, 이들은 여전히 직상생활과 밴드활동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유명세를 타면서 홍대 클럽에서 먼저 섭외가 들어오는 것. 종수씨는 “예전에 홍대에서 공연 한 번 하려면 오디션을 봐야했는데, 지금은 안 봐요. 이게 가장 좋죠”라며 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보컬트레이너인 지성씨도 예전보다 레슨이 늘었고, 영업사원인 준희씨와 재훈씨는 영업 매출에 큰 성과를 올렸다. 심지어 준희씨는 사인 요청을 받기도 했다.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에 인천팀은 없어 … 그래도 부활 꿈꾼다

이들은 요즘 7월 28일 오후 7시 강화 동막해수욕장에서 열리는 ‘2012 썸머락페스티벌’ 준비에 한창이다.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11개 팀과 함께 무대에 선다. 공연 얘기를 하던 이들이 뜻밖의 발언을 했다. 8월 10일부터 3일간 열리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인천팀은 한 팀도 초청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천시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축제를 하는데 인천팀이 한 팀도 출연을 못해요. 실력보다는 기획사 영업에 의해 출연진이 구성되는데, 인천시는 대행사에 일을 맡기고 손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을 완전히 배제하는 이 행사를 진정한 인천 축제라 할 수 있을까요?” 재훈씨는 “인디라는 문화가 예전에 비해 순수성이 많이 떨어진 느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우리가 믿을 것은 관객밖에 없어요. 지역에 우리가 설 무대가 많아지고 관객이 늘어나면, 언젠가 인천에 다시 그 시절이 오지 않을까요?” 밴드 연습실이 몰려 있는 곳에선 자장면 배달부도 가죽 재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철가방을 들고 다녔다는 그 시절의 부활을, 블루니어마더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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