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도 역사가 있고 집안에도 역사가 있듯이 오래된 길에도 역사가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 중에 한 대목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도중에, <부평신문>에 실린 제2회 인천평화발자국 홍보 글은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갔다. 인천 부평이라는 곳에 8년을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은 비록 타향살이를 하고 있지만, 아들 녀석 둘은 모두 부평이 고향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의 고향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고 들려줄 이야기도 없다는 게 가슴 아팠던 터였다.

8일 일요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청천동 영아다방 쪽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천평화발자국은 인천의 역사 속에 평화가 파괴된 현장을 전문해설가와 함께 탐방하는 것이다. 청천동 장수산을 시작으로 조병창 사택지, 부평미군기지 일대, 군수물자를 날랐던 철길, 요즘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부영공원 걷기가 이날 남길 발자국이었다.

해설가는 김현석 인하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였는데, 그의 해설은 장수산 팔각정에서 ‘부평이라는 곳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시작됐다. 산곡동 87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건설된 ‘영단주택’은 일제강점기 산곡3동에서 부평1동에 걸쳐 있던 조병창과 관련이 있다. 일본은 1938년 조선병참기지화를 선언하고 군수공업 기지화를 위한 정책을 실행해나갔는데, 부평지역에 군수공장인 조병창을 건설했다. 조병창 건설과 함께 주변 하천에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공영주택과 사택이 건설됐다.

40분 남짓 부평 역사의 전반적인 해설을 듣고 조병창 사택지가 있는 산곡초등학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걸어간 곳은 영단주택지. 영단주택지는 조병창이 세워지면서 만들어졌다. 조병창에 들어가면 징용도 면제해준다고 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기 시작해, 생각해낸 주택이란다. 골목길을 차근차근 걸어 들어가 산곡시장을 거쳐 가니 지붕 하나로 집들이 다닥다닥 연결돼있다. 영단주택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관리소ㆍ이발소ㆍ유치원이 있어야했는데, 전쟁 막바지에 노동자들만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하는 바람에 이런 집이 지어졌다고 한다.

‘설마 이런 곳에 사람들이 살까?’ 싶었는데, 한 할머니가 집 앞에 벽돌로 칸칸이 만든 화단에서 쉬고 계신다. 더욱 놀라게 한 사실은 일제강점기 영단주택지로 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것. 길 건너에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딴 세상이다.

“서울 영등포와 성북구, 대전, 평양, 청진, 이렇게 영단주택이 남아있는 곳이 있어요. 재개발로 인해 없애려고 하는데, 근대 주택의 역사라서 남기자고 하는 의견이 있어, 보류 중이에요”

해설가는 전국적으로 이렇게 많이 남아있는 곳은 없다며 역사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곳이라고 했다. 만약 이곳이 재개발이 돼 없어진다면, 주거환경을 개선해야하겠지만, 한편으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 사라진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영단주택을 빠져나와 일제강점기 때 비행장이었다는 산곡중학교 근방과 미군부대가 있었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평미군기지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 시작됐다. 미군이 인천을 접수하면서 당시 부평에 있던 일본군 병참기지를 점령하며 주둔한 것이 그 시초이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각종 부대들이 차례로 들어섰고 부대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미군들은 이곳을 ‘애스컴시티’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부영공원 역시 원래는 미군이 주둔하던 곳이었는데, 1994년 미군부대가 이전한 뒤 2001년부터 주변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면서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공원,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는 건강한 공원으로만 여겼는데, 지금은 ‘출입금지’ 공원이 돼있다. 환경오염에 관련된 현수막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경작금지’ 표지판이 있음에도, 버젓이 채소가 심어져 있다.

일행은 부평공원에서 소감을 나눴다. “부평이라는 곳이 다양성을 굉장히 많이 가진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힘이 내포된 도시이고, 또 군사도시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이어서 슬픔을 많이 간직한 도시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도시가 평화도시의 성격을 갖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석 해설사의 소감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부평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번 탐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 아이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한번쯤 이 길을 걸으며 부평의 역사를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 부평이라는 이 지역에 애정을 갖게 해 좋았다.

하루 동안 내가 걸었던 그 길 위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자국을 남겼을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선조들은 얼마나 많은 울분을 토해내며 이 길을 걸었을까? 부영공원 일대의 땅이 건강한 땅으로 하루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구민으로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겠다.

/김현희(삼산동ㆍ독서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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