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말머리를 무겁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장애인들의 지하철 타기 시위가 매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사실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장애인 누군가 목숨을 잃었을 때 반짝했던 언론의 반응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이 시위를 두고 곧 여당이 될 당의 젊은 대표는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방식은 문명사회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라며 ‘비문명적 행태’라고 낙인을 찍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가의 안전과 사회 질서를 저해할 수 있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2009년 대법원도 “집회나 시위는 다수인이 공동 목적으로 회합하고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서 그 회합에 참가한 다수인이나 참가하지 아니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아니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 두 개의 판결문에서 밝히고 있는 ‘수인 의무’란 ‘타인이나 국가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때에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다만, 최대한 공평하게 정해져야 한다.

최악의 경우 이를 빌미로 국가가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정당화 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가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주주의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기계적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불편’을 사회적 재량 또는 관용(?)으로 인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개인에게 ‘염치(廉恥)’라는 것이 있듯 공동체에도 ‘염치’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의 권리 주장은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한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그것이 쌓여 세상을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밀고 가는 힘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 불편함을 디딤돌 삼아도 된다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염치’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공동체의 염치가 수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고 정글의 법칙을 따라 ‘힘센 놈’만 살아남는 야만의 사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지하철과 버스라는 대중교통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누려야 할 소중한 공공재이다. 누구도 배제돼선 안 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 타기 시위를 보면서 ‘정치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정치가 실종된 곳에서 정치인의 세치 혀가 불러온 갈등과 혐오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군가의 노동을 사용하고, 누군가에 의한 불편을 인내하고 수용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불편함이란 희생을 감수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으로서 가지고 누려야 할 기본권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문명사회에선 하나마나한 얘기지만 장애를 가졌다고 정당한 공동체의 구성원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안락함과 권리도 결국 누군가의 불편함을 딛고 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를 다함께 당당히 외쳐야 한다. 염치없음과 무례함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 하려는 자들에게 당당하게 맞서자. 그러려면 생각과 힘을 함께 모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