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사람] 인천여성문화회관 연극동아리 ‘올레’ … 연극하다보니 우울증도 달아나

인천여성문화회관(관장 김자영)에서 연극을 가르쳐준다는 ‘연극마실’ 특강 공고가 떴다. 순간 ‘한 번 해볼까?’ 싶었지만, 남 앞에 서 본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과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그만 두었다. 한 달 후, 추가 모집 공고가 떴다.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들었다.

연기, 화술, 노래와 춤 … 연극은 혼자만, 하나만 잘 해선 안 돼

▲ 인천여성문화회관 연극동아리 ‘올레’ 회원들. 왼쪽부터 박은경·김미숙·박명순·홍윤희·조지은·이명숙·안경헌씨.
여성문화회관 연극동아리 ‘올레’ 회장 박명순(51ㆍ부평구 부평1동)씨는 2010년 5월, 그렇게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연극마실’ 특강에선 주부를 대상으로 화술과 노래, 춤, 연기 등을 가르치는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7개월 동안 강의를 듣고 실습을 거쳐 연극 발표까지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명순씨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춤도 배우고 노래도 해보고… 화술 같은 걸 언제 배워보겠어요? 잘 하지는 못해도 재밌고, 계속 관심이 가더라고요”

‘올레’ 회원들이 연극을 하게 된 사연은 대부분 명순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미숙(50ㆍ연수구 송도동)씨는 예전 백화점에서 하는 주부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연극은 선뜻 도전하기 어려웠다.

“노래는 나만 잘하면 되는데, 연극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연극은 특정한 사람들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공고를 보고 경력이 필요한지 전화로 물어봤죠.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그해 11월 ‘레이디 스크루지’라는 작품으로 첫 연극 무대에 올랐다. 이때 느낀 성취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특강이 끝나고 계속 연극을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연극동아리 ‘올레’를 만들었다. 지금 ‘올레’ 회원 수는 7명. 단원을 수시로 모집하고 있다.

이명숙(44ㆍ부평구 산곡3동)씨는 작년 7월, 올레의 문을 두드렸다. 단원을 추가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다음날 여성문화회관 사무실을 찾았다.

“공고문에 쓰여 있던 문구 하나가 마음에 들어와 박히더라고요” 그 문구는 바로 ‘우리 아줌마들의 스트레스 해소’였다. 이씨는 처음 들어와 공연 조명을 담당했지만, 곧 있을 연극에선 배역을 맡았다.

7월 5일 공연 앞두고 날마다 모여 맹연습

이들은 7월 5일 여성문화회관 개강식과 여성주간행사를 겸한 자리에서 연극 ‘그녀들은 무죄(원제:그녀들만의 공소시효)’를 공연한다. 쌀통을 사이에 두고 동네 여인들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극이다. 매주 목요일이 정기모임 날이지만 몇 주 전부터는 매일 만나 연습하고 있다.

“연극은 평상시 내 안에 숨어 있던 성격을 극대화해서 표현해야 해요. 감정을 최대한 강하게 표현하는 거죠. 그게 낯설지만, 나와 다른 삶을 연기한다는 건 재미있어요”

조지은(39ㆍ부평구 갈산동)씨는 연극을 하기 전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이사와 아는 이웃도 없이 아이를 키워야했던 것. 그는 연극 자체보다 연극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긴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전에는 제가 뭘 잘하는지 몰랐거든요. 언니들이 저의 재능과 그걸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용기를 줘요” 지은씨는 명순씨의 권유로 동네 도서관에서 역사수업을 하게 됐다.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올레’의 맏언니 안경헌(57ㆍ부평구 산곡동)씨는 동아리에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르쳐주는 이 없이 회원들끼리 모임을 해야 했던 작년 한 해 동안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동아리가 이어지도록 애를 썼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힘들었죠. 지금은 시립극단 배우 이범우씨가 재능기부로 연기지도를 해줘요”

연극하면 우울증도 달아나

연극을 통해 삶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치자면 다들 할 말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자타가 인정할 만큼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이는 바로 명숙씨다. 명숙씨는 소극적인 성격에다 이웃과 인사도 잘 하지 않고 지냈다. 그는 그때를 돌이켜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고 했다. “결혼한 지 14년이 됐는데, 사회생활보다는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않은 날도 많았고, 이웃과 관계도 끊어졌죠”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된 계기를 ‘올레’가 만들어주었다. 연기를 배우면서 그의 생활도 완전히 달라졌다.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하면서 같은 사람과 여러 번 마주쳐도 인사를 안 하고 지냈어요. 마음의 문을 닫고 산 거죠. 스포츠센터에 표현과 행동이 조금 과격한 분이 있는데, 예전엔 그분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지금 제가 그분 성격과 비슷한 연기를 하다 보니, 그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그분과 인사도 하고 지내요”

명숙씨는 무엇보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예전엔 남편 퇴근하기만 기다렸는데, 이젠 제가 집중하는 게 있으니 남편이 늦게 와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돼요”

‘올레’ 회원들에게 연극은 뭘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죠. 일단 집에서 나와 우리 옆에 앉아만 계셔도 아마 얻는 것이 많을 거예요” 이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다면, 7월 5일, 여성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이들의 공연에서 직접 확인해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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