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최근 육아 전문가 A씨가 한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아이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고도 굳어진 표정으로 ‘균형’을 내세우며 성별화된 사회적 규범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잘못된 진단을 내놓았다.

언제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하며, 아이의 마음을 살피라던 전문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성별표현(자신의 성별을 표현하는 방식)과 성별정체성(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성별)에 대한 무지와 의도적인 외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A씨는 지정성별(태어날 때 외부성기만으로 정해주는 성별) 남성인 아이가 사회적으로 ‘여성성’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성장하면서 반드시 제공됐어야 하는 교육이 제공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 유형화’가 잘 안된 것 같다고 했는데 ‘성 유형화’를 한 사회에서 적합하다고 용인되는 성별에 따른 행동을 학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디빌더인 어머니가 성역할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한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균형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사회적으로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솔루션으로 제안했다.

성역할고정관념은 깨뜨려야 한다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균형’이라는 표현을 앞세우며 결국은 사회적 기준에 따라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하면서 사회적인 성별규범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아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서도, 끝내 특정한 모습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A씨의 자의적 판단으로 사회적 기준에 맞게 살도록 만든 것이다.

젠더비순응 자녀에게 부정적 태도, 자존감 훼손시킬 수 있어

A씨는 균형 있는 발달을 할 수 있게 태권도 학원을 보내면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태권도가 남성성의 상징인가, 태권도장이 남성들의 공간인가. “형들하고 노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성별과 자신의 성별을 동일 시 할까. 친한 사람들의 성별표현을 따라갈까. 그렇지 않다.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인식이며 표현이다. 자연스러운 탐색의 기회를 널리 제공해야 한다.

젠더비순응(gender nonconforming)적인 자녀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표현할 기회를 막고 “내가 잘못한 건가” “엄마 아빠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걸 보면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 것도 내가 문제라서 그런가보다” “내가 나쁜 아이인가”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자존감과 자기애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부분에도 큰 문제가 있었다.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부모를 잃을까봐’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두려움’ 때문에 아버지(남자)를 닮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혼 때문에, 아빠에 대한 두려움에. 그런 게 이유가 된다면 왜 여섯 자녀들 중 한 자녀에게만 그런 특성이 생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하고 있는데 그럼 이혼을 한 사람들의 자녀에게는 다 이런 특성이 생길까.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성별규범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부모는 모두 이혼했을까. 전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A씨의 진단은 엉뚱한 진단이다. 보수적인 현대 심리학에서부터 이혼가정은 ‘결핍’이 있을 것이라 전제하는 ‘정상가족중심주의’에 근거한 사고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상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는 가정이라고 해서 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꼬리표 붙이기는 ‘이혼가정’에 결핍이 있다는 사회적인 편견만 강화할 뿐이다.

11년 전 방송서도 같은 일 반복…시대에 뒤처진 생각 실망

11년 전인 2011년 11월의 한 방송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그날 방송은 ‘여자가 되고 싶은 아들’이 주제였는데 A씨는 그날의 사연 주인공에게 ‘건강한 성정체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 시작이 불안정하다고 했다.

그러곤 이때도 ‘아버지의 부재로 건강한 남성성을 형성할 시기를 놓친 것이 문제’라고 했다. 당시에도 비판이 있었지만 A씨가 따로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를 낸 것은 없었다. 그때도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관련 종사자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은 더 압도적인 위치에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이 가진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 관련 시대에 뒤처진 생각을 더 깊이 있게 성찰하고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이 몹시 실망스럽다. 왜 다른 모든 아이들은 스스로를 탐구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성별규범에 따른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예외일까. 자기 논리의 충돌을 직면해야 한다.

이런 식의 상담은 ‘아동의 발달단계’와 같은 이야기를 정상분포곡선 내 ‘표준’이라는 범주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만을 ‘정상’이라고 여기며 “만으로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되면 이러이러한 특성이 나타난다, 이러이러한 행동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와 같은 진단을 쉽게 내리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다.

성별을 여성과 남성 둘로만 나누는 건 통제위한 구분법

사회의 젠더구조에는 ‘정상’의 기준과 규율이 존재하며, 성과 성욕 그리고 재생산과 가족의 형태까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통제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획일적인 모습으로 살게 만든다.

그러나 성별·성별정체성·성별표현·성적지향(어떤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는가)은 모두 스펙트럼이다. 사람들은 여성성을 수행하며 이성을 사랑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여성, 남성성을 수행하며 이성과 결혼하고 가장의 역할을 하는 남성이라는 단 두 가지의 모습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을 여성과 남성 둘로만 나눠서 인간을 둘 중 하나로만 구분하려는 시도는 인간을 쉽게 통제하기 위함일 뿐 많은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 구분법이다. 특정한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을 거기에 맞추려는 시도는 심각한 정신적 폭력이며 어린이들이 자신을 탐구하고 탐색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A씨는 이러한 잘못된 솔루션을 제시한 까닭에, A씨의 권위를 빌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례들을 섣부르게 진단하고 통제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A씨 개인의 의견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아직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 관련 편견 없는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는 상황이 아니고 그에 비해 A씨는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A씨의 의견을 의심하거나 도전하기 어려워할 사람들이 많다.

A씨의 의견은 아주 인기있는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고 각종 인터넷 플랫폼(유튜브, 네이버 등)은 짧은 영상들로 만들어져 계속 확산된다. 전파력이 너무 크고 공신력이 높다.

‘아마존’, 장난감 코너에 성별구분 없애

A씨는 다른 부분들에선 워낙 뛰어난 점이 많고 내담자들의 나이와 상관없이 훌륭한 상담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이 한 영역에서만 완전 틀린 부적절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정확히 판단할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특히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두려운 양육자들에게는 ‘위안’을 주면서 자녀에게 폭력을 가하게 할 수 있다(사연의 주인공이 성소수자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다시 돌려 놓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내 자녀를 고쳐 주세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상담을 받으러 찾아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A씨가 지금 하고 있는 조언은 “균형잡힌 교육을 해야 한다”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바로 잡겠다”가 되면 ‘전환치료’가 되는 것이데, 이는 폭력이자 세계 여러 나라에선 이미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이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은 장난감 코너에 성별구분을 없앴다. 오랫동안 획일적인 미적 기준의 상징과도 같았던 ‘바비인형’은 최근 인형을 하나 구입하면 여러 가지 머리 스타일과 옷 스타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성별 구분 없는(gender-neutral) 모델로 바뀌었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남성이라면 반드시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은 ‘성 유형화’로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렇게 여겨지게 강요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억압적인 젠더규범들을 하나씩 깨야한다.

방송에 나온 아이에게 주어져야 하는 솔루션은 남성성의 학습이 아니다. 아이는 아무 문제없으며, 성별을 둘로만 나누고 그 두 성별에 맞는 특성이 있다고 정해진 세상이 문제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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