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윤나현 성평등 교육활동가

인천투데이|흔히 교실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한다. 지난해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수업은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퀴즈도 풀면서 학생들의 참여 속에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평등 교실을 위한 약속’을 정하는 순서였다.

수업에 즐겁게 참여하던 한 학생이 갑자기 다소 삐딱하게 ‘페미니스트’에 대해 질문했다. 이전에 다른 학생들이 작성했던 예시를 소개하던 중,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의문을 가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교실이 조용해지고 대다수 학생들의 귀가 쫑긋해졌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 20대 여성과 남성의 투표 성향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소위 ‘이대남’ 현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정치인들이 ‘역차별’ 담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거나 공개적으로 ‘극단적’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등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경선에서부터 성폭력 무고죄 강화,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기능 조정, 저출산의 원인으로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등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정책적 구상이기보다는 선언적 의미에 가까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으로까지 와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며 진행된 페미니즘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성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의 영향력이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반격하는 현상’을 일컫는 ‘백래시’를 통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2001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될 때에도 큰 반대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2005년 헌법재판소가 호주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후, ‘호주제 폐지로 나라가 망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커질 때마다 항상 이에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페미니즘이 남성을 역차별한다’는 주장의 결정체가 오늘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각 후보의 성평등 정책·공약을 살펴봤다.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은 ‘젠더(기반)폭력 근절 대 범죄피해자 보호, 여성·아동 안전’이다. 이는 그간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던 데이트폭력, 스토킹, 디지털성범죄, 비동의 강간죄 등에 관한 입장과 정책 개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이다.

그런데 일부 후보는 ‘젠더(기반)폭력’이라는 용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이를 ‘범죄피해자’로 묶거나 ‘여성·아동 안전’으로 축소하고 있다. 즉, 데이트폭력, 스토킹, 디지털성범죄, 비동의 강간죄 등을 ‘젠더 문제’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젠더(기반)폭력(Gender Based Violence, GBV)’은 1993년 UN의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선언(UN Declaration of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이 한 여성에게 발생된 개별화된 사건이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즉, 젠더에 기반을 두고 발생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인 것이다.

약 30년을 거쳐 국제사회에서 일반화된 용어이며, 한국 정부도 1984년 이 협약을 비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기반)폭력’이라는 용어 사용을 기피하는 것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정말 성차별은 이제 개인적 차원으로 남은 것일까. 지난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 수차례 불공정 문제가 대두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한 가운데 구조적 성차별 문제만큼은 다 해결된 것일까.

처음 시작했던 수업의 뒷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 학생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다소 삐딱하게 질문하자, 교실 안에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필자는 질문에 감사를 표하고 전체 학생들에게 이에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페미니스트를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과 맞서 싸우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에 필자는 수정을 제안하고 “오늘 배운 성별 고정 관념, 성별 억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두 학생 모두 수긍하고 수업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 두 학생의 성별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다음번 선거에는 모두 ‘이대남’이 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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