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이동익 민주노총인천본부 조직국장

인천투데이│‘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의 줄임말인 ‘고다자’는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과 더불어 고령 노동자를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이제 고령 노동자들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올해 쉰 살이 된 아내는 아이 둘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부터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고, 20년 넘게 당당히 우리집 생계의 한축을 담당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내가 하던 일은 흔히 ‘경리’라고 불리는 회계업무였다.

6년 전 집 근처 금형공장에 취업한 아내는 그곳에서도 회계업무를 했다. 최저임금보다 ‘정말’ 조금 많은 임금을 받았지만 정시 출퇴근이 보장되고, 회사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어서 크게 불만이 없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매년 1년짜리 근로계약을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수주를 받아 금형을 납품하던 그곳에서 아내는 꼬박 3년을 일했다. 그러고는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이 만료돼 일자리를 잃었다.

사십대 중후반의 여성이 임금과 일자리가 보장된 적당한 일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업수당을 받으며 일자리를 알아보던 아내는 직업훈련지원카드인 ‘내일배움카드’로 ‘아파트회계실무’를 배워 아파트 관리실 경리직원으로 취업을 했다.

아내가 처음 아파트 관리실에 취업한 곳은 검단의 299세대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다. 관리소장이 따로 없이 입주자대표회의 대표가 관리소장 역할을 했지만 아내는 입주민들의 자질구레한 민원을 도맡아했다.

그래도 흔히 말하는 진상 입주자가 없어서 일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고 1년간 큰 불만 없이 일을 했다. 지난해 6월 집근처 오피스텔 관리실로 일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아내는 새로운 일터에서 일한지 6개월 만에 실업자가 됐다. 오피스텔 관리실에 취업한 아내는 수습기간 3개월(6~8월), 정식 근로계약 3개월(9~11월) 합해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실업자가 됐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3개월 계약기간이 종료돼 계약을 해지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관리소장의 말이었고 거듭해서 “해고(?)가 아니다”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일하는 동안 지각 한번 없이 성실하게 일했던 아내는 왜 6개월 만에 계약해지가 되었을까. 아니 왜 해고를 당행을까. 아파트(빌딩 등)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용역회사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렇듯 경비노동자들에게 나타났던 6개월이나 3개월, 심하게는 1개월짜리 초단기 근로계약이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여겼던 아파트 관리실까지 밀고 들어왔다.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로 3개월과 6개월 단위로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규제나 제도 따위에서 교묘히 빠져나감’을 법률 용어로 ‘잠탈(潛脫)’이라고 한다. 현행 법률로는 법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6개월 미만으로 초단기 근로계약을 하는 것에 대한 규제장치가 없고,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도 없다.

아무리 정부가 ‘노동존중’을 외친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엔 ‘파리 목숨’만도 못한 초단기 근로계약 노동자가 차고 넘치고 있으며 자본가의 ‘잠탈(潛脫)’ 행위는 거침없이 노동현장을 유린하고 있다.

오늘로 대통령 선거가 27일 남았다. 대선 후보들이 마치 경기라도 하듯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100만개와 200만개 만든들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보장하지 않고 ‘법의 사각지대’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노동자를 방치하는 한 대통령 후보들의 약속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사기이다.

또한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비웃는 자본가의 ‘잠탈(潛脫)’ 행위가 횡행하는 한 ‘노동존중’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늘도 아내는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뒤지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오십 줄에 접어든 아내가 찾는 일자리는 정시 출퇴근이 보장되고 언제 잘릴지를 걱정하지 않는 일자리다.

120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이하의 일이라도 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어느 대통령 후보의 생각엔 이것도 호사스런 기대겠지만 말이다.

※ 외부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