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얼마 전 연구소로 상담전화가 왔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피양육자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녀에게 ‘엄마, 나 동성애자인 것 같아’라는 말을 듣고 혼란과 걱정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엄마는 내가 동성애자면 어떻할 거야?’라는 물음에 ‘엄마는 네가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계속 사랑할 거야’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일단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며칠 간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학원도 가지 못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며 ‘집중해서 공부할 시기에 아무 것도 못하고 저러고 있으니 너무 걱정스럽다’고 했고 ‘지금은 사춘기이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 마음은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얼른 다시 집중해서 공부해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자녀의 마음도 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를 엄마가 빨리 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작년에도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으며 1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 보냈기 때문에 올해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 수 있을텐데 며칠동안 동성애 이야기만 하며 저러고 있으니 미치겠다’고 했다.

성적 지향과 성적에 대한 고민이 뒤섞여 있다. 흔한 일이다. 청소년기에는 공부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연애와 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양육자가 대한민국에 한둘일까. 정말 많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동성애’를 고민한다고 하면 고민의 결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양육자나 피양육자도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정체성과 맥락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거나 가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 사연의 주인공의 경우 입시중심의 사회에서 성적이 애매해 공부에 대한 억압을 받고 있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이성애중심의 사회에서 피양육자가 양육자에게 성소수자임을 드러냈을때 존재를 부정당하는 차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미성숙’해서 그렇다는 나이 차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때 양육자는 성별정체성 또는 성적지향이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까지 동시에 갖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

한국 사회에서 ‘정상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절박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앞서 예로 든 것은 아주 드문 케이스이면서, 좋은 사례에 속한다. 애초에 자신이 어떤 존재이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피양육자는 비로소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다.

예시로 든 사례는 적어도 피양육자가 양육자를 향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에 긍정적이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평생동안 자신의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양육자와 피양육자가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 사이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으로 부여된 ‘가족 내의 역할’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른 ‘나이차별’이 발생하고, 경제력을 양육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력에 의한 통제’를 할 수 있는 힘도 있다.

더구나 학력, 학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양육자는 피양육자가 ‘학력에 의한 차별’을 경험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입시지옥에서의 생존과 승리라는 정상성의 획득을 바란다.

또한 시스헤테로중심주의 사회(모든 사람이 시스젠더이자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두려워하며 피양육자가 시스젠더(외부성기 모양에 의해 지정받은 지정성별과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이자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믿거나 성소수자임을 부정한다.

양육자는 차별이 공고한 사회가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사회를 바꾸는 것은 너무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그 차별의 구조에 피양육자를 맞추고자 한다. 그것이 자녀가 차별당하며 살지 않게 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피양육자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없게 하며 정상성을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계에 의한 폭력이자 사회적인 차별과 억압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게 기여하는 것이다.

차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피양육자에게 ‘정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을 요구하는 폭력을 가하며 차별이 지속되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 또는 ‘비정상’이라고 낙인될 가능성이 있는 피양육자를 외면하지 않고 그 삶을 응원하며 차별과 억압의 사회구조를 함께 바꿔 갈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피양육자의 정체성에 변화를 요구하는 폭력을 가한다면 피양육자와 멀어질 것이고, 통계적으로도 피양육자는 점점 더 취약한 상태로 내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피양육자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혹은 그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자인지 판단하는 테스트기는 존재하지 않아

나는 만 3살의 어린이 A와 함께 살고 있다. 지정성별(태어날 때 성기 모양으로 지정되는 성별)이 여성이라 나와 A의 관계는 흔히 아빠와 딸로 규정되지만, A가 자신의 성별을 어떻게 느끼는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는 A가 자기 자신을 마음껏 탐구하고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찾아갈 수 있게 곁에서 지지해 주기만 하면 된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행복할 수 있게 항상 응원하며 함께 하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은 A가 자신을 어떠한 틀에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여성과 남성 둘로만 나뉘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논바이너리면 좋겠다.

또한 성적지향(누구에게 끌리는가)도 상대방의 성별이나 성별정체성과 상관없이 그저 그 사람의 인격에 끌리는 범성애자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A에게 원하는 모습이라는 의미로 욕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려 한다. 많은 양육자들과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과 대면해 상담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춘기라는 시기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기다. 학원에 하루 이틀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되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더 깊이 있게 고민과 탐구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주는 테스트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동성에게 끌리고 설렘을 느끼는 현재의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귀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 마음은 절대 잘못되거나 틀린 게 아니니 걱정할 필요없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으니 기쁘다.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자.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