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참여예산센터 소장

최계철 참여예산센터 소장
최계철 참여예산센터 소장

인천투데이│입사 시기와 나이가 비슷한 동료들이 모두 도중에 퇴직을 했는데도 꿋꿋하게 남아 거의 정년까지 요직에 근무한 선배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의 업무능력을 높이 사거나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평가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고 하자.

술이 덜 깬 상태로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고 업무는 안중에 없는 것 같았지만 함께 마신 사람들이 상위 관리자였으니 나무랄 사람도 없다. 항상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의 관심은 온통 상관이 좋아하는 것에 쏠려있다.

점심은 어디서 누굴 불러다 함께 무얼 먹을 것인지, 담배는 어떤 담배를 피우는지, 술은, 취미는, 일보다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사는데 더 관심을 가지는 그의 언행을 모두 비난했지만 겉으로는 그에게 좋은 소리만 해 줄 뿐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냈다고 치자. 자신을 보호해 주던 울타리가 부서진 모양이라고 모두들 의아해한다. 아니 울타리가 보호해 줄 수 없을 만큼의 큰 과오가 있을 것이라 추측했고 들리는 소문도 그러했다.

그래도 관대한 조직은 일자리를 보장해주고 성대한 퇴임식까지 한다. 그가 재직기간 중에 조직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고 또 남겼는가. 무슨 전통을 세우고 후배들에게 무슨 본보기가 됐는가 하고 묻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직의 업무는 어차피 개인이 한 일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한 것으로 평가되며 어쨌건 그는 주요 보직을 맡아 결재를 하고 업무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퇴임식에는 그가 걸어온 길, 그의 빠른 승진소요 연수, 탐나는 보직, 직책과 업적들이 소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행운의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재직하는 동안 그는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동향(同鄕)을 끌어 모으고 자신의 힘이 될 무엇을 찾아 성실하게 투자했다. 그 결과 후배들에게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것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았으니 아닌 것과도 같은 상황에서 많은 권력과 자유를 누렸다.

시기도 받았지만 추종자가 생기고 그의 행적을 따르는 후배들의 로망이 되기도 했다. 윗사람에 잘 하는 대신 아랫사람을 무섭게 부리고 다그쳤으니 설사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후광이 두려워 누가 이의를 달았으랴.

비위를 달래주면 상을 내리고 비위를 거스르면 혹독한 질책을 받았다. 업무 미숙이나 판단의 문제는 윗사람들이 적당히 눈감아줬고 신상은 주변의 동향사람들이 관리해줬다.

가상인 그의 공직사회 처세는 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도 처음에는 투철한 공직관으로 무장해 묵묵히 주민의 복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선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자신이 바라는 승진이나 보직을 이룰 수가 없음을 알게 됐을 것이다.

공직에 처음 들어와서부터 그런 부류가 되기까지 가르치고 방조하며, 따라다니고 부추긴 이들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 성실한 직원들은 거의 말이 없고 아부를 하지 않는 편이어서 정보도 약할 뿐 아니라 순리대로 되겠지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업무에 자신이 없는 소수는 끼리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동지를 모으고 그 부류끼리 공동 운명체라며 결속을 다진다. 그들이 서로 끌어주고 키워주는 조직 내의 강력한 별개의 조직이 된다.

누구도 그 속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세력이 자라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들 간에는 서로 관대하고 예외가 많으며 같은 운명의 동지라는 개념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한다. 모두가 그러라고 배우지는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서 그런 사례들이 목도되기에 굴복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평가가 얼마나 성실히 일하고 시민의 복리를 위해 노력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충성하고 얼마나 더 밀착하느냐에 달렸다면 안 될 말이다.

퇴직을 하고 보니 현직에 있을 때 직무에서나 사람에게서나 부끄럽지 않은 것만큼 당당한 게 없음을 절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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