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사계절

인천투데이=이권우 시민기자(도서평론가)│자식 키우며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보았음직한 질문 하나. ‘아무리 세상이 험하더라도 착하게 살아다오’ 라고 말해야 하나.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지은이는 착한 마음을 품고 살라기에는 세상이 엄청 거칠다는 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염려, 그리고 어른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까 걱정한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꾸어 보잔다.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나’라고 말이다.

흔히 말하는 개성은 어떤 뜻일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지은이의 답은 색다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엇’이라 여겼는데 아니란다. ‘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덕에. 어느 빼어난 학자의 책에서 배운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다보니 알게 됐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듣고 읽은 ‘어린이라는 세계’는 MSG(조미료)를 타지 않는, 이를테면 깔끔한 뭇국같았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아무나 쓸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을 담담하게 써내려 갔다.

책을 읽으면서 정작 본인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비록 양육자는 아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어린이를 지켜보았기에 이런 담담한 글쓰기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런 짐작은 어긋나지 않았다.

평소 지은이는 ‘선생님은 남의 집 애라 예쁜 것만 보이는 거예요’라는 말을 자주 들은 모양이다. 그래도 섭섭하지는 않았다. 외려 ‘남의 집 애’라는 말이 좋았다. 그렇다면 남의 집 엄마, 남의 집 이모 삼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될 테니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좋아하고 샘내고 안심하고 걱정하면서 남의 집 애를 같이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느껴서란다.

거리두기가 주는 신선한, 그리고 선선한 사랑은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확인된다. 지은이는 독서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이성으로 가르치겠노라 결심하고 아예 이를 ‘사훈’으로 삼았다.

진실한 자세로 직업윤리를 지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바 어린이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기실 사랑으로 가르치겠노라 덤벼들면서 우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지 곱씹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거릴 테다.

일상에서 어른이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 지은이가 들려준 경험담에 그 답이 있다. 지은이가 어렸을 적에 가족과 유원지에 갔다가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의 무릎에 앉아 편안하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만원버스가 되고 말았다.

급기야 좌석 근방에 서 있던 사람은 손잡이가 아니라 유리창을 짚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어린 시절이건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풍경이 있다. 지은이가 있던 좌석 옆의 한 청년도 자꾸 사람에 치이자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등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청년이 들릴락 말락 하는 목소리로 말했단다. “애기가 짜부라질까 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아무런 인연도 없는 관계지만, 오로지 아이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서 지은이는 자신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깨달았을 테다. 그래, 우리도 딱 이정도만 어린이를 대하면 되겠지 싶다. 호들갑 떨며 아이를 위한다지만 결국 어른의 자존심이나 허세를 채우려다가 어린 영혼에 깊은 생채기나 내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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