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한국의 학교 현장에선 매년 학생들에게 성교육 15시간을 제공하게 법률적 근거가 마련돼있다. 하지만 일년에 한 시간도 성교육에 온전히 시간을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N번방과 박사방 사건 등으로 양육자들의 성폭력 관련 두려움은 매우 높아졌다. 이런 영향으로 성교육 영역이 사교육 시장으로 흘러들어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생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저는 교육현장에서 늘 공격성 질문을 받기도 하는 등 제 강의가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어떻게 저런 분들은 늘 저렇게 좋은 반응만 받는다고 할까요”

이런 상담을 하는 성교육 강사가 많다. 이들은 ‘스타강사’라 불리며(혹은 스스로를 ‘성교육계의 일타강사’라고 칭하며) 자신의 강의 반응이 너무 좋다며 늘 극찬을 받는다고 자랑을 하는 후기를 올리는 강사들의 홍보물을 보고 주눅이 든 상태였다.

그런 강사에게 “본인을 어떻게 정체화하세요”라고 질문을 하면 대개 ‘성평등 활동가’라고 답변을 한다. 그렇다면 할 말은 명확하다. ‘성평등 활동가’로 자신을 정체화한 강사가 ‘잘 나가는 성교육 강사’라고 홍보하는 강사들과 자신을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성평등 활동가’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팔리는’ 성교육 강의를 만들고자 하는 강사는 교육의 내용과 활동의 방향이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성적인 권리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야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을 제대로 한다면 모든 사람의 성적인 권리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등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젠더·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 알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금기를 깰 수 있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권 의식과 성평등 의식을 바탕으로 정보를 사고하고 판단·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가족주의, 정상가족이데올로기, 성별 이분법, 시스헤테로(외부성기 모양으로 지정된 성별과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이성애자) 중심주의, 성역할 고정 관념, 획일적인 미적 기준, 자본주의에 질문하고 도전·저항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후기를 매번 받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강의를 하다보면 가끔씩 교육 중에 소리를 지르는 사람, 그냥 나가는 사람도 생기고 주최 측에 ‘저런 사람 다시는 부르지 말라’고 항의하는 사람, 온라인 공간에 찾아와서 테러를 하는 사람도 생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교육을 하려고 교육의 방법과 내용을 늘 고민하는 게 일상이다.

인권교육과 성평등교육이 제대로 일어난 현장이라면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혼란스러움이 생기고 마음에 불편한 점이 일어나야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전혀 불편하지 않게 했다면 그것은 이 사회에 퍼져있는 통념이나 상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전보다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의 순결교육, 안전교육, 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절대 좋은 게 아니다.

인권과 같은 불편한 이야기를 피하며 ‘팔리는’ 성교육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성교육계 일타강사’, ‘국내 최고의 성교육 강사’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분들이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성교육을 인성교육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우려스럽다.

성교육은 인권교육이어야

성교육은 인권교육이어야 한다. 우리는 착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분명히 알고 다른 사람의 권리도 분명히 알고 서로가 함께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인권교육, 성평등교육, 시민교육을 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본인도 잘 알지 못하고 또한 이 사회에 인권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좀 더 말랑말랑하게 들리는 인성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인성과 인권은 조금도 비슷한 단어가 아니다.

내가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 나와 같은 지위를 가지지 못한 사람(그것이 직장 내 상하관계든 성별에 따른 권력이든)을 나와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동등한 인권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인 것이지 내가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인성이 권력이 되는 세상’, ‘성교육은 인성교육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면 권력, 권리, 인권 등의 개념을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정확한 표현을 통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안된 사람들이다.

아들·딸, 남성·여성을 구분해 교육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참 우려스럽다. 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양육자들의 걱정을 이용해 ‘아들은 가해자 되지 않기’, ‘딸은 피해자 되지 않기’에 집중하는 내용이 그렇다. 단순 마케팅이라고 보아도 문제지만, 더 문제적인 부분도 있다.

성별을 이분법으로 밖에 보지 못하고 성통념과 성역할 고정관념에 갇힌 사고를 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여성과 남성이 알아야 할 지식 그리고 갖춰야 할 태도는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려면 오히려 모든 사람의 정보를 다 정확히 접해야만 한다.

‘아들 성교육’, ‘딸 성교육’이 따로 있는 것처럼 나눠서 이야기하고 홍보하고 교육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성별·나이·장애 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며 평등하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에 아들·딸은 중요하지 않다.

공교육과 평생교육으로 누구나 인권과 성평등 기반 성교육 받을 수 있어야

성교육 시장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이 기회를 ‘직업’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성교육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함께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성교육을 그저 자기 자신이 명성이나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 너무 명백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성평등 활동가’가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분명한 문제 인식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기관·조직·일터·학교에 성교육·성평등교육 강사를 초청하거나, 자신의 자녀를 위해 사교육을 알아보는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가장 좋은 것은 공교육과 평생교육으로 누구나 제대로 된 인권과 성평등을 기반으로 한 포괄적 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입법이나 행정기관의 제대로된 지침 마련이 필요하겠으나 지금은 갈길이 멀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성교육을 제대로 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다양성연구소 유튜브와 MBC충북 홈페이지에 가면 무료로 제대로된 성교육 콘텐츠를 확인 할 수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포성모성’이라는 콘텐츠 13강을 공개하고 있고, MBC충북은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양질의 성교육 콘텐츠를 공개했다.

성교육 관련 제대로 된 인식을 기반으로 부적절한 언변에 휘둘리지도, 불필요하게 성교육 사교육 시장으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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