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노점 단속에 반발 농성 중 익사체로 발견돼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이덕인 열사 명예 회복해야"
유가족 "죽기 전까지 아들 죽음 이유 모를까 겁나"

인천투데이=박소영 기자│“26년 동안 청와대부터 국회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내 아들이 죽은 이유 좀 알려주십쇼”

부축을 받으며 기자회견장 앞에 선 노모의 간절한 목소리가 인천시청에 울려 퍼졌다. 노모는 1995년 11월 28일 사망한채 발견된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의 어머니 김정자(77)씨다.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 오후 인천시청 앞에서 추모식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공대위는 이덕인 열사 사망 후 매년 추모제를 진행한 국내 노동·시민·사회·인권·빈곤단체 등이 모여 구성했으며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인천에선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주노총 인천본부, 인천지역연대 등 단체 32개가 포함돼 있다.

이덕인 열사, 1995년 노점단속 반발 농성 중 익사체로 발견

김정자 이덕인 열사 어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김정자 이덕인 열사 어머니가 발언하고 있다.

이덕인 열사는 1995년 11월 25일 아암도 해변에서 노점을 운영하다 구청 등의 철거를 피해 고립된 망루에 올라갔다가 실종됐다.

사흘 뒤인 11월 28일 변사체로 발견된 그는 상의가 벗겨진 채 양손이 밧줄에 묶여있었다. 또한 몸 여러 곳에 상처가 있어 타살로 의심할만한 정황이 많았다.

그런데 경찰은 시신이 있던 길병원 영안실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했다. 강제 부검이 이뤄졌고 사인은 ‘익사’로 발표됐다.

1996년 4월까지 열사 부모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을 펼쳤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2002년 김대중 정부시절 꾸려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열사가 공권력에 의한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바뀌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명예 회복이나 배·보상심의 신청이 모두 기각됐다.

2009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가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사망 인지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2010년 과거사정리위 활동이 중단되면서 조사가 멈췄다.

진실화해위 이덕인 열사 의문사 조사 조속히 시작해야

1996년 4월 열린 이덕인 열사 영결식의 모습.(사진출처 인천민주화운동센터)
1996년 4월 열린 이덕인 열사 영결식의 모습.(사진출처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지난해 5월 20일 국회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통과시킨 뒤 2010년 활동을 중단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같은해 12월 다시 출범했다.

공대위는 정근식 과거사정리위원장과 면담을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정 위원장은 선결 과제로 조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올해 3월 10일 이덕인 열사 가족과 공대위는 사망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조사신청서를 진실화해위에 제출했으나, 진실화해위는 조사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개시 여부를 신청인에게 90일 이내에 통보해야 함에도 신청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사 개시 여부를 통보하지 않고 있다.

유가족 "죽기 전까지 아들 죽음 이유 모를까 겁나"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 오후 인천시청 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묵념하고 있는 모습.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 오후 인천시청 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묵념하고 있는 모습.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김정자씨는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5개월간 장례도 못 치르고 거리를 해맸다”며 “당시 철거 작전을 지시하고 수행한 인천시, 연수구, 경찰, 군대, 용역업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아직도 아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 2년 간 건강이 악화돼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죽기 전까지 아들 죽음의 진실을 알지 못할까 겁났다”며 “하루라도 빨리 아들 죽음의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정부는 이덕인 열사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당시 노점 철거 책임자들은 유가족 앞에서 사죄하고 이덕인 열사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진상조사 신청 사건이 산적해 있어 조사 개시 통보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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