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인천투데이│온 나라가 한 세대를 위해 비행기의 착륙을 멈추고 출근 시간을 늦추는 날. 19일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초·중·고 12년의 긴 시간동안 지금 하고 싶은 것, 자고 싶은 것을 다음으로 미뤄가며 준비한 이 날은, 12년의 교육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지를 평가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능이 끝나면 학원을 한 번도 가지 않고, 소위 말하는 불우한 환경에서 수능 만점을 받은, 개천에서 난 용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채운다.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진짜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수능에서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고득점을 하기 어렵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 이상이 서울 강남 3구 출신이다.

교육은 더 이상 계층의 격차를 뛰어넘는 사다리로 기능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출신 대학에 따라 취업할 직장이 정해지고, 취업하는 직장에 따라 소득이 정해지고, 그 이후의 삶이 결정된다.

공고한 학벌사회의 입구가 바로 ‘수능’이다. 이 수능을 시작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성적으로, 스펙으로, 실적으로 자신의 쓰임을 증명해야하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최근에 대학생활 실태조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결과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신입생의 절반 이상은 학생부종합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1·2학년 때부터 전공과 진로를 결정하고 착실히 그 경로를 따라간다.

대학에 입학한 후, 수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는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듣는다. 일주일에 3회 이상 혼밥을 하고, 공강이 생기면 주로 혼자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을 본다.

취업이 되지 않을까봐 항상 불안하고, 그래서 하나라도 더 많이 배우고 채우려 한다. 그러다보니 대학생활 가장 큰 고민은 ‘시간관리’이다. 이렇게,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없는 시간과 돈을 쪼개며, 나를 갈아내며 위태롭고 불안한 미래를 혼자 준비한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워놓는 게 아니라, 동그라미 세모 네모 다 다른 모양이니까 우린 서로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가진 게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실력’(그게 돈이든, 뭐든)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려본다.

설레기도 하지만, 막막하다.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불행의 크기마저 비교하는 사회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얼마 전 만난 후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불필요한 경쟁이 너무 많다는 것에 백번 동의하지만, 변할 수 있을까 싶다고. 그러면서 툭 한 마디를 던졌다. “근데, 안 될 거 같은 것들도 생각해보면 다 된 것들도 많잖아요. 결국 움직여야 되는 거니까”

대학이 그저 취업만을 위한 하나의 ‘관문’에 불과한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쟁은 나를 병들게 한다고,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끝이 엄청난 사회대개혁이 아닐지라도,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는 패자가 되었던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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