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지극히 당연해야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시장자유질서와 자본가의 이윤 극대화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고, 국가마저 노동의 가치를 외면하는 사회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은 마치 세상의 이치처럼 여겨졌고, 생존을 위해서는 동료를 짓밟고 일어서야 했다. 그러한 사회에서 ‘촛불정부’임을 자처한 이 정권의 대통령이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단호하게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문장은 구조의 변화 없이 구호만 남은 채 세상에 변화를 만들지 못했고 ‘기회의 평등’, ‘공정’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시험만능주의’, ‘능력주의’로 차별과 착취를 개인의 탓으로 만드는 단어가 돼버렸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정체성 가운데 n개의 ‘비정상’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애초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 오직 경쟁만이 시대의 과제로 주어진 사회는 공동체를 구성할 권리, 개개인의 행복할 권리를 박탈한다. 그리고 승자 독식의 구조에서 비용이 되는 요소들은 모두 제거, 외면된 채 생존게임이 이어진다.

다시 말해 사회적 소수자들은 애초에 이 생존게임에 포함조차 되지 못한다.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운이 좋게’ 생존게임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승자 독식의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게임은 상상조차 되지 못하면서 손쉽게 제거당한다. 그리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했으나 ‘개인의 무능’으로 패자가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자신의 자녀가 ‘자기 앞가림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양육자들이 있다. 엄청난 부자가 되지 않아도 되니, ‘사람구실’하며(필요한만큼 적당히 돈을 벌며)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큰 성공을 강요하지 않으며 나름의 행복을 찾길 바라는 마음은 좋은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 모두를 생존게임으로 몰아넣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456은 중요한 숫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추정하고 있듯, 456은 가운데 숫자를 의미한다. 즉 가장 보통의 사람 혹은 중산층 정도를 의미한다.

주인공과 주요 등장인물이 대기업 출신 노동자인 까닭도, 서울대 수석 출신인 까닭도 바로 ‘패자’로 점철된 삶이 아닌 보통의 사람을 의미하는 456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456은 동료의 목숨값을 획득하기 위해 게임을 이어가는 생존게임을 수행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애초 이러한 생존게임의 형태가 이 사회의 모습이라면, 피양육자가 어느 위치에 있기를 바라야 하는 것일까. 가면을 쓰고 게임을 즐기는 VIP가 되기를 바라야하는가. 인간성을 상실하고 공동체를 뒤로한 채 진행해야하는 생존게임은 결국 어느 누구도 승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이 생존게임에 균열을 내고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오징어 게임’은 공정, 기회, 평등, 자유, 심지어 민주주의 장치까지 게임의 작동방식이자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 드라마가 가장 무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수결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이 체제를 유지하는 구호에 그칠 뿐이라는 점이다.

자유·평등·공정의 가치가 향해야 할 인간성의 회복과 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경제 질서의 작동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시험만능주의’, ‘능력주의’로 끝날 뿐이다. 패자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사회구조, 착취가 기본값인 공존을 상상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게임의 도구로 이용되는 목숨값으로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금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행동해야할지 고민을 시작해야한다. 우리는 사회 변화가 소수의 정치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회의 큰 변화는 평범한 사람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가 초대된 이 거대한 ‘오징어 게임’에 균열을 내는 고민을 시작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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