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추석 연휴, 변기가 막혔다. 전날 마트에서 생전 처음 내 돈 주고 광어회를 사 먹은 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회 아래 장식용으로 깔린 하얗고 투명하고 꼬불거리는 면 같은 것. 이것의 정체를 몰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릴까. 그런데 이것에서 생선 비린내가 많이 났다. 혹 이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뜯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못 먹을 걸 삼켜 탈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고민 끝에 그것을 잘게 잘라 변기에 넣기로 했다. 평소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때 종종 이용하는 방법이다. 대신 절대 막히지 않도록 새끼손가락 굵기의 정방형으로 최대한 잘게 자른다.

이 두 덩어리의 ‘투명한 면’을 가위로 잘게 토막을 냈다. 좀 뻣뻣한 감은 있었지만, 물에 풀어지면 라면이나 당면처럼 후루룩 내려갈 거라 짐작했다. 툭, 변기 안에 떨어트려 물을 내리는데 느낌이 싸했다.

낱낱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한 덩어리로 뭉쳐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어딘가에 턱 걸린 듯 물 내려가는 소리가 시원치 않았다. 아, 막혔구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거 같았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뚫어뻥이면 될까. 뚫어뻥은 압력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주로 휴지처럼 부드러운 것이 관을 꽉 막고 있을 때 유용하다. 지금은 면 사이로 물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상황이라 뚫어뻥은 사용하기 적절하지 않은 거 같다.

그렇다면 관통기는 어떨까. 관통기는 스프링 관을 배관 안으로 집어넣어 막힌 것을 부수고 흐트러뜨려 흘러가도록 하거나 밖으로 꺼내는 용도다. 관통기 끝의 나선형으로 말려 있는 쇠가 꼬불꼬불한 면을 끌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관통기 사용법도 쉽지가 않다. 유튜브의 힘을 빌려 몇 차례 시도 끝에 겨우 관통기를 끝까지 변기 안쪽 관으로 밀어 넣었다. 몇 번 손잡이를 돌린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프링 관을 꺼냈다. 허무하게도, 관통기 끝에는 몇 가닥의 투명한 면이 겨우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물을 몇 번 내려봐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져 인터넷에 적힌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세탁세재를 뜨거운 물에 녹여 잔뜩 거품을 낸 뒤 10분 후 내려보라 한다. 두 번이나 해봤다. 비닐봉지로 변기 윗면을 막아 누르는 방법, 변기 솔 끝에 비닐봉지를 씌워 마구 쑤시는 방법 등 뭘 해도 꿈쩍도 안 했다.

믿었던 관통기도 변기를 못 뚫고 온갖 사적인 비법도 다 소용이 없다니. 이 연휴에 결국 전문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건가. 통장 잔고도 떠오르고 팔다리 힘도 풀려 그만 울고 싶어졌다.

바로 그 순간, 그제서야 투명한 면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 아이의 성질을 알면, 어쩌면 쉽게 해결이 될 수도 있다. 검색 결과 그것의 이름은 ‘천사채’. 다시마와 우뭇가사리를 가공해 만든 것이란다. 천사채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을 발견했다.

천사채를 당면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끓는 물에 베이킹소다를 풀어 넣고 천사채를 10분 동안 담가두는 것! 꼬들꼬들한 천사채가 미끄러운 당면처럼 될 수 있다면 물의 압력에 내려가지 않을 턱이 없다.

나는 빨래 삶을 때 사용하는 커다란 들통을 꺼내 물을 붓고 베이킹소다를 훌훌 털어 넣었다. 변기에 붓고 뚜껑을 덮고 10분을 기다렸다. 한 번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세 번째로 펄펄 끓는 소다 물을 부었을 때, 변기 저 깊은 곳에서 쿠르르릉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물이 내려갔다.

성공한 건가. 그 질긴 것이 정말 내려간 건지 믿기지 않아 서너 번은 더 물을 내렸다. 오, 드디어 나의 사랑스러운 변기로 돌아왔구나. 변기를 끌어안을 뻔했다.

하나의 실패에 하나의 도전을 더하고,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고민하고 절망하다 보면 결국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나 보다. 나를 괴롭히는 너는 대체 누구인고, 하는. 그 질문을 목도하고 나서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내가 겪은 이 과정이 과학자들이 문제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결론을 얻어낸 방식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다행히 오늘은 변기 전문가라도 된 듯 해피엔딩을 맞이했지만, 담엔 아닐 수 있다.

그땐 또 그 나름의 해결책을 찾겠지. 모든 문제는 결국 결말이 나기 마련이다. 해결이 안 되는 방식의 종결도 끝은 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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