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인천투데이│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 싶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갑자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대사관들이 긴급 대피하고, 공항으로 사람들이 피난해 기약없이 기다리고,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체에 매달리다 떨어져 사망한다.

아이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무작정 아이들을 장벽으로 넘긴다. 사회활동을 해온 여성들이 두려움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유명 코메디언 같은 민간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다는 뉴스와 사진들을 접한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들은, 흑백의 영상과 사진들로만 접했던 한국전쟁의 흥남 철수, 1.4 후퇴를 떠올리게 했다. 전쟁이 민간인들에게 끼치는 비극들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기술이 개발된다 해도 어느 시대와 공간에서든 반복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비극의 참상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의 비극을 날 것 그대로 목도 하고 있다.

피난해야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수용하는 것은 국제적 문제가 됐다. 한국도 2001년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한 이후 이번 철수 직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재건활동을 했다.

미국정부에서 난민들을 해외 미군기지들에게 수용할 논의를 하자 한국정부에선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한국정부는 한국에 올 수 있는 난민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한국에 올 수 있는 난민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정부를 위해 일하다가 위험에 처하게 된 자로 선별됐다.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특별공로자’라는 특이한 명칭이 발표됐다.

정부가 난민을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2018년 제주도에 온 예멘난민, 그리고 대구주민들의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집단행동에도 이어지듯 무슬림 이주민들을표적삼아 여전히 지속되는 갈등을 의식한 처사일 것이다.

여전히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그간 난민과 관련해 정부에 느끼지 못한 단호한 속도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무사히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숙제가 있다.

한국사회 특히 무슬림 난민들에 대한 혐오의 확산에 정부가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은 여러번 지적됐다. 정부는 이미 개방된 항공길, 국내법, 국제사회의 조약들에 따라 제주도에 와서 난민 신청한 예멘 난민들에게 무비자제도를 ‘악용’한다는 낙인을 씌웠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난민을 반대한다는 집단들이 갖고 있는, 그들이 비자제도를 ‘악용’한 ‘가짜난민’이라는 잘못된 편견에 근거를 제공한 셈이었다. 프레임이 확산되며 ‘난민’을 반대한다는 대규모 집회들이 이어졌다.

현재 진행되는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을 대구 북구청이 중단시킨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대구 북구청에선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슬람사원 건립을 중단시켰다.

대구지방법원이 공사중지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여전히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이슬람사원 건립을 중단시키는 행정조치를 한 것은 무슬림 이주민을 공권력을 동원해 배제시키는 차별이다. 이주민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세우는 대신 차별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난민’을 ‘특별공로자’라고 명명한 것은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여론를 우회하고자하는 비겁한 시도였다. 그속에는 난민이 한국에서 어떤 혐오와 차별에 노출됐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난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원칙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난민과 이주민을 차별하는 일부 주민들의 의식을 정당한 것으로 존중하는 결정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인종차별금지 협약, 고문방지 협약, 난민 협약과 같은 조약들의 원칙과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설명하기보다, 실제로 국가적 재난으로 난민이 발생할 때마다 사후적으로 항공길을 틀어막고, 난민 신청자, 인도적 체류자, 난민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유지시켜 난민의 정착과 성장을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국내의 갈등을 우회하면서도 국제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행보를 취한다. ‘재정착난민’, 이번의 ‘특별공로자’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난민을 선별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진행되는 비극에 한국사회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국제사회에 참여를 하고 영향을주는 만큼 영향을 받고 책임성을 갖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더 이상 ‘국민정서’라는 방패 뒤에 숨지 말고 원칙을 갖고 이주민이 더불어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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