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맵│데니얼 예긴│우진하 옮김│리더스북

인천투데이=이권우 시민기자(도서평론가)│국제문제에 문외한이지만 미군이 서둘러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는 장면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9·11테러를 저지른 알케에다 세력을 탈레반 정권이 비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이 내세운 것처럼 자국내에서는 보편적인 인권을 짓밟고 대외적으로는 무고한 시민을 위험에 빠트리는 테러를 저지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이 전쟁을 일으켰을까.

‘스탄’은 땅이라는 뜻인데, 이 접미사가 붙은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엄청나다. 아프간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 지역에는 최소 2000억 배럴의 석유와 6조6000억㎥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탈레반은 이 자원을 놓고 악연을 맺었다. 클린턴 시절 탈레반 정권의 반대로 아프간을 지나는 송유관 프로젝트가 무산된 바 있고, 부시 시절에는 아예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는 군사작전을 짜놓은 바 있다. 9·11테러는 미국 처지에서 보자면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었다. 그래서 전쟁은 시작됐다.

의아했을 터다. ‘미국은 왜 베트남전쟁에서 배운 교훈을 잊었을까’라고 말이다.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정권은 아무리 외세의 강력한 지원을 받더라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를 모를 리 없다.

소련이 이미 낭패를 당한 지역임에도 여러 논리를 내세워 아프간을 침공하고 지배하고 친미 정권을 세운 것은 결국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세계 차원에서 에너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을 이뤄내지 못하고,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미국의 철군이 상징하는 바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전문가연하며 분석해보면 이렇다. 이번 철군은 미국이 중앙 아시아 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려고 무리한 군사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로 보인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싶겠지만, 내가 이런 해석을 하는 데 도움을 준 책이 있으니 대니얼 예긴의 ‘뉴맵(The New Map)’이다. 지은이는 ‘황금의 샘’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에너지와 국제 관계 전문가다.

‘에너지, 기후, 지정학이 바꾸는 새로운 패권지도’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소련, 중국이 어떤 에너지 전략과 협력관계를 짜고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쳤다.

미국은 이번 세기 초반에 에너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석유는 물론이고 천연가스마저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21세기판 황금광 덕에 일거에 해결됐다.

셰일암석층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해냈으니, 텍사스주에서만 생산된 석유량이 OPEC(석유수출기구)회원국의 생산량을 훌쩍 넘어섰다. 이른바 셰일혁명은 국제정세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먼저 셰일오일은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경제제제로 이란의 석유수출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셰일오일 덕이었다. 이 압력을 못버티고 이란은 결국 핵개발을 포기했다.

러시아에 에너지 의존이 높던 유럽에게도 선택지가 늘어났다. ‘시장의 다양화야말로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잖은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감이 더 강해졌다. 중동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고 다른 지역과 수입가를 흥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 덕이다.

앞으로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예측하는 데는 ‘2장 러시아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된다. 중국이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맺는 이유를 자세히 분석했다(미국의 ‘주적’이 이제는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알고 읽으면 훨씬 더 흥미롭다. 특히 남중국해 긴장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봤던 내용의 종합판이라 여기면 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전환 문제도 다뤘다. 대체 에너지가 이제는 주류 에너지가 됐다는 점, 다른 무엇보다 발전소 설비규모의 저장장치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미래를 전망하는 태도가 이 책의 신뢰도를 높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책을 읽으면 복잡한 국제정세가 에너지라는 프리즘으로 명징하게 해석되는 면이 있다. 한발 더나아가 ‘새로운 에너지와 지정학적 지도에서 한국이 갖는 위치, 그리고 새로운 지형에서 한국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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