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달력을 보니 오늘이 처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다. 날이 추워 모기도 힘을 못 쓴다는 뜻이다. 정말 요 며칠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그런데 과연 모기 입도 비뚤어졌을지는 좀 더 지나야 알 것 같다. 올 여름 무더운 날씨와 가뭄 탓에 기력을 못 쓴 모기들이 늦여름 장마에 알을 낳고 본격 활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모기들이 여름보다 가을에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질병관리청이 채집한 모기는 8월보다 15% 이상 많았다.

모기.(출처 픽사베이)
모기.(출처 픽사베이)

동물의 피를 빠는 것은 알을 밴 암컷 모기인데, 가을철 산란기를 맞은 암컷 모기는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피를 필요로 한다. 모기소리와 가려움에 밤잠을 설치고, 혹 반려동물에게 심장사상충을 옮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하찮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모기는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곤충이다. 사실 모기는 해마다 72만여명의 목숨을 빼앗는, 세상에서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이는 동물 1위다. (2위는 사람 47만명, 3위는 뱀 5만명으로 사람에겐 사람도 아주 위험한 존재다.)

모기는 위험한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옮기는 매개체다.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지카열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모기가 우리의 피를 빠는 순간, 몸속으로 들어온다. 가장 골칫거리는 매일 약 1000명의 사람을 죽이는 말라리아다.

아직 면역체계가 약한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주로 목숨을 잃는다. 말라리아 백신은 효과가 일시적이고, 치료제는 값이 비싼 데다 부작용이 있다.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유일한 예방책이자 안전한 해결책, 살충제나 모기장으로 모기를 막아낼 수 있을까? 어림없다. 게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를 알아볼 방법도 없다.

과학들은 천적을 이용한 고전적인 퇴치법에서부터 유전자를 변형시킨 GM모기나 방사선, 박테리아로 불임 모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실험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모기 퇴치법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말라리아 원충은 모기가 가진 특별한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야만 모기의 몸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단백질은 유전자의 명령으로 만들어진다.

말라리아 원충을 살리는 단백질이 모기 몸에서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말라리아가 사람에게 전달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방법은 간단하다. 모기의 DNA에서 단백질 제조 명령을 내리는 부분을 잘라내는 거다.

DNA를 편집하는 이 기술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이라 부른다. 유전공학의 역사에서 가장 최근인 2012년에 찾아냈다.

지엠오(GMO)라 불리는 유전자변형생물이 필요한 유전자를 다른 종에서 채취하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 임의의 장소에 집어넣어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방식은 그 종 자체의 DNA를 변화시키거나 제거한다. 그래서 지엠오는 원래 생물과 다른 종으로, 크리스퍼 편집기술를 사용한 생물은 원래 생물과 동일한 종으로 본다.

이 기술을 사용한 돌연변이 모기를 야생에 풀어놓으면 점점 확산되고, 인간은 드디어 말라리아에서 해방이 될까? 두 가지 이유로 아직은 어렵다. 특정 단백질이 없는 모기는 다른 모기에 비해 약하고, 유전적으로도 대물림될 확률이 적다.

여기에 유전자 드라이브라는 방법을 추가하면 드디어 생존력과 유전율이 동시에 올라간 모기가 탄생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친 실험실 모기를 단 1%만 집어넣어도 1년 안에 말라리아 발병이 멈추게 될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왜 당장 이 방법을 사용해 말라리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지 않는 걸까. ‘유전자 드라이브’ 모기를 야생에 풀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모기 종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즉, 모든 모기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모기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거나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에게 종을 변화시킬 권리가 있느냐 하는 질문은 유전공학 윤리의 근본을 묻는다.

말라리아 치료제나 백신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질병이 주로 가난한 저개발 국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매력이 없으니 제약회사들이 개발과 투자에 소홀했던 것이다. 어쩌면 진짜 심각한 문제는 모기나 말라리아 원충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