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천투데이│‘남자는 울면 안된다, 남자는 주방에 들어가면 안된다, 남자가 무슨 아기를 돌보냐’ 등의 말로 남성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돌보지 못하게 하는 사회는, 남성 개인의 삶을 망치고 사회적으로 ‘해로운 남성성’을 남성에게 주입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마음에 귀 기울이고 공감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이자 목적인데 남성을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생명)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

그런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는 남성을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만듦으로써 남성의 삶과 사회를 망가뜨린다. ‘돌봄은 남성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여기게 만드는 구조는 성별에 따른 차이를 두는 노동문제와 이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만드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돌봄노동은 개인의 삶 그리고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 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가장 필수적인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서 함께 모여 사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런데 ‘여성의 일’로 여겨지게 만든 돌봄노동을 부수적인 일, 하찮은 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과 다른 생명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착취와 억압의 체계로써 조응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돌봄노동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에서도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공고하게 결탁해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 거대한 구조는 근본적인 성 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고 있다.

성역할 수행으로 마주하게 되는 노동문제의 곤란함은 성차별을 강화한다. 여성에게 가사노동, 육아노동이 집중돼 임금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여성들이 여전히 특정한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성역할 수행으로 인한 성차별의 결과다. 또한 ‘가족을 부양할 경제력’을 갖추도록 요구받는 남성은 돌봄노동 분야의 직업을 선택하기 어렵게 된다.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을 하면 보수를 적게 받는 구조는 이러한 현실을 유지시킨다. 세상을 남성과 여성 둘로 나누고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저평가하면서 성차별이 지속, 심화되고 있다.

이는 성역할 수행의 기대와 여성의 돌봄노동 착취를 기본으로 하는 구조의 문제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미시적인 지원들로 해결하기란 어렵다.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와 시민을 철저하게 착취하면서도 이를 ‘자발적’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착취라고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그리고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이런 관점은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가부장제·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은 이런 관점에 극도로 취약함을 느끼게 된다.

여성의 돌봄노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남성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돌봄노동이 강요됨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여성은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패턴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장시간의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돌봄노동에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착취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은 정치가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착취를 통해 소수를 위한 이윤을 극대화하는 구조는 이제 끝내야 한다. 착취가 기본이 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성별의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란 어렵고,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노동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는 사람을 자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사람이 돼야 한다. 특히 남성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을 남의 일이나 하찮은 일로 여기지 않고 나의 일, 나를 위한 일, 우리 모두를 위한 일로 여길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재설계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도한 노동시간 그리고 성역할 고정관념과 싸워야 한다. 남성을 ‘남성성’이라는 틀에 가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싸우고 모두를 해방시키는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함께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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