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호 전교조인천지부 정책실장

김웅호 전교조인천지부 정책실장.
김웅호 전교조인천지부 정책실장.

인천투데이│2020년까지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진로희망사항이란 항목이 있었고, 그 기재요령에는 가장 먼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서술돼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각 학년별로 조사하여 입력하되, 진로희망에는 자신의 특성(적성, 인성, 지능 등)을 이해하고, 주위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도록 하여 입력한다.’(2020 학교생활기록부기재요령. 교육부).

2021년부터는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진로희망사항 항목이 없어졌지만,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진로활동영역 특기사항 내의 희망분야란에 여전히 학생의 ‘진로희망 희망분야 또는 희망직업을 입력’하도록 돼 있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현실에서 아이들이 과연 ‘주위의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일이 가능한가, 중·고등학교 시기에 구체적인 희망 직업을 설정하는 것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의문을 안은 채 그 항목을 입력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고민과 사색의 시간들도 중요한 거 같은데, 그것은 너무 한가한 생각인가.

교육부가 2025년에 전면 시행하겠다는 고교학점제를 놓고 학교현장의 우려가 깊다. 제도시행이 학교교육의 현실 여건에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고 본다. 학교현장에서 고교학점제 시행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내용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평가방식이나 대입제도 개편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점, 무분별한 과목개설로 인한 교육의 편식, 학교 간 학교 내 서열화, 비정규직 양산 확대, 다과목 수업 지도의 교사 부담, 학교공간 활용의 어려움, 현행 학급담임에게 집중된 교무행정·생활교육 체제 등이 대표적인 문제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고등학교 교육은 공통기본교과를 중심으로 한 보편교육 강화가 더 필요한 시기일까. 아니면,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것처럼 학생의 진로설계에 따른 선택과목 중심으로 개별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등 토론과 의견수렴은 불충분했고, 이미 3년 전부터 연구·선도학교 운영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을 거론한 이유는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우리 중등교육 현실에서 구체적인 진로 결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진로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학 서열화가 여전히 공고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인생 설계가 자신이 진학할 대학의 상대적 위치에 절대적으로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교육문제는 교육제도의 개혁만으로는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의 서열화와 불평등한 노동시장이 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외시하고 자꾸만 교육제도 개선만으로 개혁의 흉내를 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을 지난 수십년간 계속 바꿔 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입시경쟁교육의 폐단을 확실하게 없애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꾸고 그에 맞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교육이다. 다만, 제도권 교육에서도 이상적인 진로교육이 가능하려면 골깊은 대학 서열화 철폐와 사회의 평등 실현이 먼저이다. 현정권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와 대학 무상교육 실현이 대학 서열화 철폐의 주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학위 수준에 따른 임금과 기타 복지 등에서 차별을 없애야 한다. 고용 형태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바꾸지 않으면 교육에 투자해 학벌을 확보하려는 국민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어떤 학교를 졸업해 어느 직업을 갖더라도 빈곤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의 특기와 적성, 소질과 흥미에 맞는 진로 설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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