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7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청량리역을 오간다. 주안역에서 전철로만 왕복 140분이 걸린다. 지루하긴 하지만 나름 재미도 있다.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이따금 졸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청량리역이다. 그런데 첫날엔 무료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전철 안이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엔 나도 시원했다. 20분쯤 지나면서부터 서늘해지더니 곧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몸이 차가워졌다. 그런데도 기내에선 ‘냉방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방송이 연거푸 나왔다.

아마도 전철 안이 너무 덥다는 민원이 들어온 것 같다. 이날 추위가 제대로 뼈에 새겨진 건지, 그 다음부터 전철을 타기 전 겉옷을 가방에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같은 온도와 습도에서도 누구는 덥고 누구는 춥고. 어쩔 수 없는 차이다. 그럼에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적당한’ 또는 ‘참을 만한’ 온도를 찾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최근 이와 관련한 연구 내용이 기사에 실렸다.

적외선 열 카메라로 사람의 귀, 코, 뺨의 피부 온도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을 감지해 열적 쾌적감(온도에 따라 쾌적감을 느끼는 것)을 읽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무리 가운데 추위나 더위를 느끼는 사람의 수를 계산해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이 기술에는 어김없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이 동원된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열적 쾌적감을 파악하는 방식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빅데이터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찜찜했다. 많은 경우 빅데이터는 “여성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하더라도 성별에 따라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우리 문화 전반에서 볼 수 있는 젠더 데이터 공백의 다양한 사례를 밝힌 책이다. 쉽게 말해, 세상에 오직 ‘남성’만 있다는 전제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피아노 건반은 남성 성인의 손 크기를 기준으로 만들었고 약물 처방 역시 건장한 성인 남성이 기준이다. 10세기의 바이킹 해골은 여성 골반이 분명함에도 무기와 함께 발굴됐다는 이유로 100년이 넘도록 남자로 여기다가 2017년에야 DNA 검사를 통해 여성으로 정정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 약을 먹는 사람,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을 모두 남성으로 간주하는 것, 즉 남성을 기준으로 삼는 문화에서는 젠더 데이터 공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일 뿐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우선 애플사의 아이폰 크기가 남성 손에 맞게 만들어졌다.

“평균적인 남자는 편안하게 자신의 휴대폰을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평균적인 여자의 손은 전화기를 겨우 쥘 정도다.” (206쪽) 사무용 의자의 크기와 머리 받침의 높이, 모양도, 자동차의 내부 구조도, 심지어 백신도 모두 ‘남자용’이다.

저자는 이렇게 여성의 존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이 된 것은 남성들의 고의 또는 악의 때문이 아니라 그저 무념이라 말한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남자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여자들은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 무념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인간이라 통칭하는 것은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16쪽)

지금의 데이터는 인류의 절반을 지울 만큼 확실히 편향돼 있다. 나도 등받이 없이 내 체격에 맞는 사무용 의자에 앉아 일하고 싶고, 기차나 좌석버스에서 너무 높은 머리 받침 때문에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이동하지 않길 바란다. 누구든 자기 체격에 맞는 자동차 시트에서 운전해야 사고가 나더라도 중상이나 죽음을 피할 수 있다.

전철 안의 추위로 소름이 쫙쫙 돋는 동안 인공지능은 내 신체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수집할지 궁금하다. ‘젠더’ 데이터를 고려해야 한다는 건, 추위나 더위를 느끼는 피부 온도를 정할 때 성별에 따라 다른 계산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제대로 된 데이터를 넣어 주기만 한다면, 인공지능은 잘 계산해낼 수 있을 거다. 어느 인간보다도 인공지능이 훨씬 똑똑하니까.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