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헌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본부장
직장협의회 노조로 전환, 2004년 최초 총파업 그리고 파면
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노조를 하나로 통합

인천투데이=서효준 기자│

공무원직장협의회 가입을 시작으로 공무원노동조합 지부장과 인천본부장 등을 맡아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묵묵히 외길을 걸어간 이가 있다. 지난 7월 1일자로 공로연수에 들어가며 퇴직을 앞둔 이상헌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본부장이다.

공무원이라 견책‧정직‧해임 등 징계와 숱한 연행이 겁이 날 때도 있었고, 그때마다 옆에 있는 동지들이 있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 노조가 바로 서는 게 곧 청렴한 공직사회로 가는 길이고, 주민을 위한 행정의 길이라고 했다. 이상헌 전 본부장을 만나 공직사회 25년 삶과 공무원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이상헌 전 본부장은 2009년 통합된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에서 첫 본부장을 역임했다.
이상헌 전 본부장은 2009년 통합된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에서 첫 본부장을 역임했다.

1996년 연수구 세무직 공직생활 시작, 갑작스런 남동구 전출 

이상헌 전 본부장은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이다. 전북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했다. 그는 대학 졸업후 서울에 올라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이후 인천시 9급 지방공무원 공채에 합격해 1996년 7월 1일 연수구에서 세무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며 인천에 자리 잡았다.

그는 연수구 세무과에서 일하던 중 1999년 1월 갑자기 남동구로 전출가게 됐다. 1994년 인천 북구(현 부평구)에서 발생한 세무비리 때문이었다. 사건은 당시 세무 업무가 수기로 진행되는 점을 노려 벌인 비위였다.

사건 종결 후 세무 관련 업무는 모두 전산화됐다. 하지만 인천시는 사건이 종결되고 세무 업무가 모두 전산화 됐음에도 세무직은 지역 내 비리와 계연성이 높다는 이유로 비리 예방 차원이란 명목을 내세워 세무직들을 다른 곳으로 전출했다. 

이상헌 전 본부장은 당시 연수구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남동구로 전출됐다.

이 전 본부장은 "다음날 승진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진 명단에 포함돼 국장 결재까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다음날 내가 받은 것은 승진 축하가 아닌 전출 명령이었다"며 "하루아침에 연수구에서 남동구로 근무지가 바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정돼 있던 전출도 아니었다. 단지 세무직이란 이유만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아무리 공무원 사회가 상명하복과 권위주의가 만연한 곳이었다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인사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세무 업무가 전산화돼 과거에 벌어진 비리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지만 행정부의 독단적인 세무직 전출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전했다.

이 전 본부장은 이때 노동권 보장과 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2004년 11월 전국공무원노조는 총파업을 했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2004년 11월 전국공무원노조는 총파업을 했다.(인천투데이 자료사진)

남동구 공무원직장협의회 비대위 그리고 노동조합으로 전환

그가 남동구로 전출 간 1999년 공직 사회에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 전 본부장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노사정위원회가 발족했다. 이후 공무원직장협의회법이 제정되고 국내 각지에서 공무원직장협의회가 발족했다”며 “남동구도 당시 흐름에 따라 직장협의회가 발족했고 이곳에서 공무원노조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무원직장협의회는 공무원노동조합으로 이행하는 중간 단계 조직이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OECD는 한국 정부에 가입 조건을 제시했다.

1996년 OECD가 제시한 가입 조건은 ▲복수노조 금지조항 삭제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권 보장 ▲노조 정치활동 보장 등이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공무원노동조합 중간 단계로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인정했다. 국민의정부 출범과 동시에 1998년 2월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남동구 공무원들도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직장협의회를 출범했다. 하지만 공무원직장협의회 남동구지부는 출범 후 2년이 채 안 돼 와해 상태에 이른다. 직장협의회 회장이 구청장과 독대하는 등 행정부 편에 서는 어용노조 모습을 보였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상헌 전 본부장을 비롯한 직장협의회 회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조직을 새롭게 정비했다.

이 전 본부장은 "남동구 직장협의회가 어용노조 모습을 보이며 와해 상태까지 갔다"며 "때마침 부평구에서 공무원노조 활동을 하던 박준복 부평구지부장이 좌천과 보복성 전출로 남동구로 왔다. 그와 의기투합해 조직을 바로 세우고 2002년 7월 직협을 노동조합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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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공무원 총파업 당시 인천본 사무처장을 지낸 이상헌 전 본부장. 당시 총파업으로 파면됐다.
2004년 공무원 총파업 당시 인천본 사무처장을 지낸 이상헌 전 본부장. 당시 총파업으로 파면됐다.

2004년 전국공무원노조 총파업 이후 파면‧‧‧ 2년 후 복직

이 전 본부장은 전국공무원노조 남동구지부 사무국장을 역임한 후 2004년 인천본부 총무국장을 거쳐 사무처장에 당선됐다. 2004년은 이 전 본부장뿐 아니라 전국공무원 노조 전체가 힘든 한 해였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노동3권 중 절반도 포함되지 않은 공무원노조특별법 입법안을 내놓는다. 공무원노조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공무원노조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과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이 없는 공무원노조 특별법 폐지를 요구하며 2004년 11월 15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의 후유증은 컸다. 총파업에 참여한 공무원 530여 명이 무단결근‧노조활동 참여 등 이유로 해직‧파면 당했다.

파업 당시 이 전 본부장은 인천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었다. 최근 복직한 강영구 현 공무원노조 인천본부 정책기획단장이 2004년 총파업 당시 인천본부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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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강영구 본부장은 지도부로서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해직‧파면됐다. 2년 간 복직 투쟁 끝에 2006년 사법부로부터 파면 처분 취소 판결을 받았다. 이 전 본부장은 공무원 신분을 회복했다.

이 전 본부장은 “공직사회는 권위주의‧비민주‧관료주의가 팽배한 조직이었다. 조직 내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이라는 단결된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단결권과 교섭권이 빠진 특별법은 (우리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법안이었다”고 전했다.

2009년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장
2009년 전국공무원노조 인천본부장 당시 모습.

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노조를 하나로 통합

전국공무원노조는 2005년 8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조의 전통을 잇고 조합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공무원노조특별법을 거부하고 법외노조로 남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탄압했다.

이 전 본부장은 “반대했던 ‘공무원노조 특별법’이 2006년 시행되면서 탄압 강도는 계속 높아졌다. 정부는 지침을 내려 노조사무실을 폐쇄했다”며 “남동구지부도 노조사무실을 침탈당해 구청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탄압이 계속 심해지자 공무원 노조 내에 법내노조로 들어가자는 목소리들이 생겼다. 결국 법내노조를 선택한 민주공무원노조와 법외노조를 고수한 전국공모원노조로 나눠지게 됐다”며 “2009년 통합되기 까지 두 조직 간 입장 차이가 매우 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전 본부장은 2007년 전국공무원노조 4대 인천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본부장을 맡다 갈라진 두 노조를 봉합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두 조직 간 갈등은 심했다.

전국공무원 노조 내에서 일명 통합파로 분류된 그는 당시 통합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에게 배신자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통합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대의가 그를 움직였다.

이 전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공무원 노조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반에 대한 탄압이 가중됐다. 통합노조를 건설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며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양적‧질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당위성에 바탕을 두고 조합원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09년 9월 전국공무원노조와 민주공무원노조, 법원공무원노조가 다시 하나로 거듭났다. 공무원노조는 통합과 함께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이 전 본부장은 통합 후 실시한 선거에서 전국공무원노조 인천지역본부 5대 본부장으로 다시 선출됐다. 

이상헌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본부장은 지난 7월 1일부로 공로연수를 시작해 내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이상헌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천본부 본부장은 지난 7월 1일부로 공로연수를 시작해 내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상급자와 공유해 해결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중요"

마지막으로 이 전 본부장은 공무원 노조와 공무원 전체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그는 “공직사회 개혁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공직사회 민주화는 일방적인 상명하달 식 수직적인 관계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단체장이 국장의 고민을 돕고, 국장이나 과장이 팀장을 돕고, 팀장은 일선 주무관의 고민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선 공무원이 현장에서 확인한 문제점 등을 상급자와 공유해 해결해갈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와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며 “공무원 사회가 수평적인 구조 안에서 주민과 소통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할 때 국민에게 인정받는 공무원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노조가 노동자로서 누려야하는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넘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공무원 노조가 되길 바란다”며 “어려운 사람에 대해 연민의 자세를 갖고 그들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며 주민을 품어 가는 노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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