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폭염에 며칠째 에어컨을 끄지 못하고 있다. 하루 한두 번 환기할 때를 빼고는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닫고 커튼까지 쳐 놓았다. 바깥의 더운 기운을 어떻게든 집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엊그제는 책상에서 자료를 찾고 있었다. 몸을 늘려 기지개를 켜는 순간 창문으로 저녁 햇빛이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이날의 빛은 다른 날에 비해 더 환하고, 색도 더 강한 것 같았다. 빛에 빨려가듯 창문을 여니 서쪽 하늘에 노란빛이 가득했다. 아! 조만간 저 하늘에서 대단한 광경이 벌어질 거란 신호다.

서쪽 하늘의 노란빛은 아직 해가 지평선보다 약간 높이 있다는 뜻이다. 노란빛은 곧 주황색과 붉은빛으로 바뀌다가 세상을 짙은 파랑으로 물들인 후 검은 밤이 된다. 해의 위치에 따라 하늘색이 달라지는 이유는 빛이 공기나 수증기, 먼지 등 다양한 입자와 만나 부딪히며 다양한 성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녁 노을.(출처 픽사베이)
저녁 노을.(출처 픽사베이)

빛에는 산란이라는 성질이 있는데 빛이 입자에 부딪혀 방향을 바꾸는 걸 말한다. 산란에는 부딪히는 입자의 크기가 중요하다. 커다란 빗방울처럼 파장보다 입자가 큰 경우, 빛의 일부는 표면에서 반사되고 나머지는 입자의 속으로 들어가 굴절과 반사를 거쳐 다시 밖으로 나온다. 이런 방식의 산란을 기하학적 산란이라 부른다.

파장과 입자의 크기가 비슷할 때는 거의 모든 파장을 산란시킨다. 이를 미 산란이라 부르고, 미세먼지나 꽃가루, 연기, 아주 작은 물방울, 얼음 입자 등이 미 산란의 원인 물질이다. 모든 가시광선을 고르게 산란하는 미 산란의 경우 가시광선의 모든 빛이 겹쳐 하얀색으로 보인다.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다.

입자가 파장보다 훨씬 작을 경우 파장의 길이에 따라 산란의 양상이 조금 다르다. 빨간색 처럼 긴 파장은 약하게 산란이 일어나지만, 파장이 짧은 보라색 빛은 강하게 산란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낮 동안 가시광선은 공기 입자와 만나 가장 먼저 보라색이, 그 다음으로 파란색이 대기 중에서 산란되고, 그 산란된 빛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다.

그런데 해가 지표면에 가까이 다가가는 아침이나 저녁에는 가시광선이 두꺼운 대기층을 통과해야 한다. 대기의 얕은 층에서 푸른빛은 이미 산란돼 버리고, 지표면과 가까운 대기층까지 겨우 와닿는 빛은 모두 파장이 긴 붉은빛들 뿐이다. 노을빛이 붉고, 해가 지표면에 가까이 갈수록 붉은색이 점점 짙어지는 이유다.

그런데 마침 일출과 일몰에 가까운 시간대에 지평선 근처에 구름이 있다면, 하늘은 구름의 하얀 빛에 붉은 산란 빛이 섞여 황홀한 색을 만들어낸다. 이 풍경에 경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나 역시 노을을 무척 좋아한다. 방으로 밀려 들어온 노란빛에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빠르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곳곳이 높은 건물로 막힌 도시 주택가. 노을을 보려면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가 도로 옆 인도에 올라서니 적당한 구름과 내 머리 위까지 붉은 기운이 번진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충분히 땀을 흘릴 가치가 있었다.

아쉽게도 노을빛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언제나 노을은 그랬다. 결코 오래 머물러 주지 않았다. 군청색의 푸르스름한 대기 속을 걸으며 생각했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 그러니 순간을 아름답게 살라는 메시지를 저 하늘이 끊임없이 나에게 전해주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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