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인천투데이│최근에 막을 내린 유럽의 남자 국가대항 축구경기에서 한 선수가 심장마비로 경기 도중 쓰려졌다. 쓰러진 선수를 두고 벌어진 선수들과 관중들의 태도는 놀라웠다. 선수들은 쓰러진 선수를 둘러쌓아서 정신을 잃은 모습이 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았다.

상대팀의 관중들은 자신들의 국기를 던져주며 노출을 막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긴박한 순간에 벌어진 즉각적인 대처였다. 나였으면 어땠을까. 충격에 몸이 얼어서 그냥 지켜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감동하던 중 또 다른 영상을 발견했다. 여자 축구 경기였다. 한 팀은 히잡을 쓴 선수들로 이뤄진 팀이었고, 한 팀은 히잡을 쓰고 있지 않은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히잡을 쓴 선수가 경기 도중 히잡이 풀리게 됐다.

당황하며 웅크려서 히잡을 다시 쓰려는데 상대팀 선수들이 다가와 해당 선수가 히잡을 다시 쓸 수 있도록 그 주변을 둘러쌓아 주는 영상이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상대방을 위해 반사적으로 반응해 행동해주는, 이런 즉각적인 대처들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절대로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반복해서 경험하고 배우고 생각했던 것들이 몸에 체화돼 즉각적인 행동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일 테다.

센터에선 간혹 학교에 다니는 무슬림 여학생들의 상담을 하게 된다. 최근의 상담들은 모두 공교롭게도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 학교에 가고싶지 않다는 학생들에 대한 상담이었다.

친구가 없으니 학교에서 외로워지고, 학교에 가고 싶은 동기가 없어지고,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흥미를 잃게 된다. 부모들도 학교에 가기싫다는 학생을 억지로 학교에 보내느라, 그리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를 두고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했다.

무슬림 남성 학생들과 다르게 여성 학생들은 초등학교 5·6학년 정도가 되면 외견 상의 변화가 생긴다. 여학생들은 히잡을 쓰기 시작한다. 손목과 발목을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긴 옷들로 몸을 가린다.

중학교에 올라가 학교에서 교복을 입게 되면 다리를 드러내는 치마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교복을 입지 않거나, 치마를 최대한 길게 하고 그 안에 바지를 입기도 한다.

이런 외견상의 다름을 어색해서 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다름에 더욱 노출될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특히나 코로나 시기, 학교에서도 학생들 간의 친목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도 함께 축소되고 있다.

어른들의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학생들의 고립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학교 적응에 힘들어하는 무슬림 여학생한테 호의적이었던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 친구의 어머니가 무슬림은 여성들을 차별하지 않느냐며, 자녀가 그 학생과 가까이 지냈다가 안좋은 일을 당할 수 있지 않냐며 걱정했다고 했다.

학교 상황은 아니지만, 센터에선 간혹 아동들이 다닐 유치원을 함께 찾아줘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어떤 유치원에선 너무도 당당하게 다른 학생의 부모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아동을 받을 수가 없다라고 밝히는 곳도 있다.

이런 일부 학부모들의 강경한 태도 역시 교사들이 학생들의 상황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설이게 하거나, 학부모의 차별적인 요구에 동조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학생들의 고통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좀더 많이 만나야 하고, 많이 경험해야 한다. 어색한 것들이 익숙한 것이 될 때까지. 일선의 교육자들이 학부모들의 편견과 차별에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들이 편견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학급생이 또는 이웃이 처한 상황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서 행동할 수 있게 되도록 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차별 없는 학교 교육의 목표는 그런 것이 됐어야 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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