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홍콩│전명윤│사계절

인천투데이=이권우 시민기자(도서평론가)│직접 가보지는 못한지라 홍콩하면 영화가 떠오른다. 으레 그러하듯 이소령이나 성룡으로 대표된 무술영화가 떠오른다. 그러다가 영웅본색으로 기억되는 느와르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최정점은 왕가위 감독이 아니었는가 싶다.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를 기억하는 영화팬은 상당히 많을 터다. 그런데 전명윤의 ‘리멤버 홍콩’을 읽으면서 이런 추억으로만 홍콩을 기억하는 것이 교양인으로서 적절한 자세가 아니구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홍콩에는 홍콩만의 역사가 있고 꿈이 있고 좌절이 있었다. 그 역사를 한마디로 하면 파란만장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842년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다음 영국에게 홍콩섬을 할양했다.

1860년에는 카오롱섬을 추가로 할양받았고, 1898년에는 더 영역을 확장해 청나라한테 이 지역을 99년간 조차하기로 조약을 맺었다. 중국이 한낱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중국사람에게 홍콩은 되돌려 받아야 할 땅이었을 테다. 반영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그 시기의 홍콩을 한마디로 “중국 혁명의 인큐베이터이자 혁명, 사변, 내전, 전쟁으로 피폐해진 20세기 아시아 인민의 피난처였다”라고 말한다.

홍콩의 역사는 한번 더 요동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많은 피난민이 홍콩으로 밀물 몰아치듯 몰려왔다. 영국식민지이자 금융자본의 첨병이자 반 중국의 상징이 뚜렷해진 셈이다.

대혼란은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일어났다. 이미 1984년 영국이 조약대로 홍콩을 1997년 중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예상되는 혼란을 막기 위해 중국은 반환한 다음 50년동안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일국양제, 고도자치를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인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보며, 절망감에 빠진다. 야만의 통치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중국으로 반환된 다음 홍콩에서는 몇 차례 민주화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어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진 배경을 잘 이해하도록 이끈다.

일단 송환법이 무엇인지 보자. 2018년 2월에 홍콩의 한 커플이 타이완으로 여행을 갔다가 남자가 여자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다. 홍콩은 속지주의라 홍콩 사람이 해외에서 벌인 범죄를 처벌할 수 없고, 범죄를 저지른 국가로 보내 재판을 받게 한다.

문제는 홍콩과 타이완이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법의 허점 탓에 범인은 살인죄가 아니라 절도혐의로 29개월 형을 언도받았다.

그러자 홍콩 당국은 송환법을 개정해 “이 법의 적용범위를 삭제해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않은 지역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뒤 문맥으로 보건대, 반대할 일이 없다.

그런데 왜 홍콩인은 이 일 때문에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일까? “홍콩 사회가 반발한 까닭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중국과 홍콩의 형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우리 돈으로 5억원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하면 최대 10년형을 받지만 중국에서는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송환법을 반대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홍콩에는 코즈웨이베이서점이 있다고 한다. 이 서점은 출판도 하는데, <시진핑과 여섯 여인>이란 책을 펴냈다. 시진핑의 여성편력을 폭로한 책이라는데, 이 책이 나오고 나서 서점관계자가 잇따라 실종됐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홍콩인은 “자신도 언제든지 납치, 불법 구금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법이 개정되면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박탈되리라는 공포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본디 여행 가이드이자 가이드 북 집필자였다고 한다. 흔히 좋은 곳만 보는, 관광을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큰 도약을 했다. 그곳의 겉모습만 본 것이 아니라 심층을 봤다.

앞에서 말한 역사와 꿈, 그리고 좌절에 공감했고,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 책을 읽으며 내내 여행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에 공감했다. 이 책 덕에 홍콩을 보는 다른 눈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코로나 19로 시위가 주춤한 사이에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돼 양국양제는 종료됐다고 한다. 지은이가 기억하자고 말한 홍콩은 무엇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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