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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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공동대표

인천투데이│미국을 향한 추파가 도를 넘었다. ‘occupying forces’의 해석을 둘러싼 다툼이 이미 박제화된 공안 시대의 ‘반미’ 문제까지 소환시키며 점입가경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선 후보 중 한 명이 꺼낸 ‘점령군’이란 단어의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의 역사적 해석 문제 때문이 아니다. 해방공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엇갈린 평가 때문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넓게 봐서 사론(史論)의 영역에 해당한다. 얼마든지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다.

정말 중대하고 우려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되던 순간에 가졌을 법한 미국에 대한 맹목적 기대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이 저잣거리에서 나누는 장삼이사의 말 속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대선판의 유력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체를 뒤흔드는 세력에 대해 국가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국민의 안전과 국토의 보존을 위해서 주권을 위임받은 권력이 행사해야 할 최소한의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부여해 준 그러한 권한을 방기한 채 국가의 운명을 미국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이다.

점령군 논쟁 속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이적행위’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했다느니, ‘반일 반미국가를 만들려 한다’느니, 심지어 ‘주한미군을 몰아낼 것인가’라고 논평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미군을 긍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반국가 행위라도 되는 것인 양 호들갑을 떤다. 그렇다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미군의 품속에서 영원히 안주하자는 말인가.

대선 후보로 나온 사람이 파장을 예상하면서 굳이 점령군이란 말을 이 시기에 꺼내 놓은 것도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다. 말한 주체는 다르지만 소련 포고문의 ‘조선 해방 만세’란 문구만 강조한 모 단체 회장의 발언 역시 지나쳤다.

해방 직후 한때 떠돌아다니던 말이 있다. ‘미국을 믿지말고 소련에 속지마라.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은 조심하라’ 이런 속담이다. 1945년 9월 8일에 인천항을 통해서 한반도에 상륙한 미군과, 같은 시기 한반도 이북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에 대해서 민중들은 금세 실체를 간파했다.

강대국인 두 나라가 결코 우리 민족을 위해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도 안보 동맹의 강화에만 목매고 있으니, 혹시 안보를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큰 오산이다.

공식적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위협’이자 ‘적’이다. 동시에 ‘생명공동체’이자 ‘평화공동체’의 대상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방의 강화와 평화협력의 기조가 동시에 추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주도하에 추진돼야 할 정책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조속히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해야 하고, 주변국들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외교 능력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협상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의존해야 할 상대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 국방의 자주권을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해 주한미군을 본국으로 철수시키겠다는 말을 왜 우리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없는가. 그것을 마음대로 말할 수 없을 때 미군은 점령군이 된다.

물론, 미군은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동맹군이다. 이역만리 땅에 와서 군생활을 해온 그들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데에 주저함은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캠프마켓의 로드맵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미군들의 이야기가 빠진 건 아쉬운 점이다.

1945년 이후 여기서 근무한 미군들은 부평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으며 한 시대의 역사를 만들었다. 퇴역 미군들을 추적해 그들의 기억도 공원화될 캠프마켓의 공간 속에 담아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미군의 과오 역시 숨김없이 밝혀내야 한다. 미군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고비마다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다. 가령, 광복 후 미군이 인천항에 들어오던 날, 환영 인파에 섞여 있던 노동조합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과 보안대원 이석우가 일본군의 총격에 사망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미군은 조선 내의 자생적 단체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전술부대를 전국에 파견해 직접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군이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배치됐고, 이어 1966년에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 즉 SOFA가 체결됐다. SOFA의 체결 과정에서 동두천의 ‘못골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964년 2월, 못골 판잣집에 살던 세 딸의 어머니 서씨가 인근 미군부대 주변에서 빈 깡통을 줍다가 미군이 조준해 쏜 총에 사망한 사건이다. 서씨는 음력설이 다가오자 아이들 옷이라도 사주려고 만삭의 몸으로 집을 나섰던 참이었다.

같은 시기에 두 딸의 어머니인 이씨 역시 미군 부대 안으로 끌려가 돈과 옷을 빼앗기고 알몸으로 쫓겨나왔다. 미군의 ‘야만행동’에 여론이 들끓자 국회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SOFA의 체결을 촉구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 첫 상륙한 미군을 사람들은 ‘Welcome US Army'란 플래카드를 내걸어 환영했다. 지금도 동맹군의 방문은 환영해 줄 일이다. 그러나 환영식이 끝난 후 접어 든 플래카드 뒤에서는 동등한 협상자로서 우리의 주권과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능력이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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