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 선거 탐방기

“저를 뽑아주신다면 민주적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해낼 것이며, 여러분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다가올 5·31 지방선거에 출마한 어떤 후보의 선거 유세가 아니다. 한 초등학교의 전교어린이회 선거에서 회장 후보로 출마한 어린이가 방송유세를 통해 또박또박 했던 말이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각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회 선거가 한창이다. 어린이회 선거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대표자를 직접 뽑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첫 출발의 자리다. 요즘 어린이회 선거는 어떤 모습일까? 17일 구산초등학교(부개3동 소재) 어린이회 선거 현장을 찾았다.


폭력·왕따 없는 학교 만들기 한목소리


▲ 후보들의 방송유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구산초등학교 어린이들                             ⓒ사진제공·구산초등학교


학교 곳곳에는 어린이회 선거 출마자들이 직접 제작한 선거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홍보물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후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난 기호3번 찍을래. 잘생겼잖아! 에이, 근데 사진이 너무 안 나왔다. 훨씬 잘생겼는데…”

“잘생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기호1번. 친구들한테 다정하게 잘 대해주고 성실하잖아. 그런데 왠지 3번이 될 거 같아”

어린이들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대며 자신이 추천하는 후보에 대해 이야기했고, 심지어는 당선 유력 후보를 지목하기도 했다.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모든 후보자들이 방송실로 모였다. 마지막 선거운동이라 할 수 있는 방송유세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계란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된다면 계란처럼 여러분을 위해 꼭 필요한 영양소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회장이 되면 실내화의 바닥이 다 닳도록 열심히 피땀 흘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기 좋은 최대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툼이 없는 학교, 쓰레기가 없는 학교, 왕따가 없는 학교로 만들겠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공약을 발표하던 후보들에게는 한 명도 빠뜨리지 않는 공약이 있었다. 그것은 폭력과 왕따가 없는 학교로 만들겠다는 것.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학교생활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어린이들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표를 뽑는 선거,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투표가 시작되기 직전 어린이회장 후보 남현호 어린이가 있는 6학년 1반을 찾았다.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좋겠어요”

“우리학교를 이끌어가야 하니까, 리더십이 있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회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재밌게 하고 잘 이끌어가고 책임성이 강한 사람이 회장이 되어야죠”

같은 반 친구가 회장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반 후보를 찍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회장의 상을 그리고 있었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뽑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12시 40분이 되자 유권자인 4~6학년 어린이들의 투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4학년 어린이들은 처음 해보는 투표가 낯선지 교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뭘로 찍어야 돼요?”, “선생님, 둘 다 여기다 넣는 건가요?” 등 많은 질문을 했다. 4학년 덕분에 투표는 꽤 오랜 시간 진행됐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의 대표를 뽑는다는 생각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투표에 임했다.

5시 30분 개표가 모두 끝난 결과 전교 어린이회장에는 6학년 5반 김민구 어린이가, 부회장에는 6학년 1반 남현호 어린이와 5학년 1반 신소현 어린이가 당선됐다.

회장에 당선된 김민구 어린이는 “전교회장이라는 직책에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건네준 한 표 한 표에 힘을 얻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겸손하고 성실한 회장이 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부회장에 당선된 남현호 어린이는 “무척 긴장했는데 많이 부족한 제가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장을 놓친 건 조금 아쉽습니다. 앞으로 부회장 자리에서 우리 학교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선거 통해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어린이들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4대 원칙대로 진행된 어린이회 선거에서 어린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구산초등학교 노희정 교감은 “학생회 선거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해서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는지 지켜보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소양을 쌓아가는 교육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어린이회 선거를 담당했던 곽시옥 교사는 “아는 사람이니까 뽑아주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얼토당토 않는 유세를 할 경우에는 비웃고 뽑아주지 않는다”며 아이들도 공약이나 유세를 잘 살펴보고 투표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선거에는 돈이 개입되지 않으며 상호 비방도 없다. 오로지 공약과 유세를 통해 깨끗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상호비방, 돈이 오가는 불법 행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를 만들어버리는 어른들이 어린이선거에서 한수 배워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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