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사랑해 너무나 너무나’(저스틴 리처드슨・피터 파넬 글, 헨리 콜 그림, 강이경 옮김, 담푸스 펴냄)라는 그림책이 있다. 동물원의 수컷 펭귄 두 마리가 사육사가 준 알을 극진히 품은 끝에 부화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아마 어떤 분들은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이 그림책이 가족의 소중함과 함께 동성애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다는 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내용을 창작했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미국 센트럴파크 동물원의 로이와 실로라는 턱끈펭귄 커플의 실제 사례라고 한다. 이들이 1998년 서로를 발견한 이후 6년 동안 다정하게 지냈다는 후문도 남아 있다.

펭귄 뿐만 아니라 동물계 전체에서 동성애는 아주 흔한 일이다. 생물학자들이 발견한 동성애 동물은 기린, 사자, 박쥐, 갈매기, 고슴도치, 타조, 송어, 파리 등 무척 다양하다. 현재까지 1500여 종의 동물이 유혹에서 짝짓기, 교감, 양육 등 여러 방면에서 동성애 습성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에게 동성애는 오랫동안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번식과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것이 생물학의 정설인데 아무래도 동성애로는 번식이 불가능하다.

특히 성 선택에 목숨을 건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동성애는 자연계에서 도태되어야 할 현상일 뿐이다.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거나, 임신 초기 자궁의 환경이 동성애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주장이 있지만, 아직 과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이론은 없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펴냄)에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인 리처드 프럼은 “생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성행동을 진화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동성 간 성 행동의 생물학적·진화적 역사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프럼은 인간의 모든 동성 간 성행동은 여성의 ‘배우자 선택’을 통해 진화했음을 전제로 한다. 다만 남성과 여성의 동성애 진화 과정에는 차이가 있다. 여성의 경우, 우리의 조상인 아프리카 유인원은 근친교배를 방지하기 위해 암컷이 다른 그룹으로 이주하는 방식-예를 들어 결혼 후 시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진화해왔다.

이렇게 ‘암컷이 출가하는 사회’에서 암컷은 수컷의 ‘성적 강제(인간 사회에서 성폭력이라 부르는)’와 각종 협박에 노출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만들기 위해 동성 간 성행동을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도 조금 더 복잡하긴 하지만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 유리하도록 진화한 것은 마찬가지다. 남성 동성애는 여성을 성적·사회적으로 지배하려는 남성들의 관심과 경쟁을 줄이기 때문에 여성에겐 안전한 환경이 조성된다. 동시에 여성들은 동성애와 관련된 형질을 가진 남성들을 배우자로 선호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오히려 “성행동의 개념과 사회적 기능을 확대”(464쪽)했을 거라고 한다.

남성 동성애는 남성들 사이에서 덜 공격적이고 더 협동적인 사회관계의 진화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소수파 남성의 형질을 여성이 선호하고, 소수파 남성들은 여성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비(非)성적관계’가 만들어졌다.

프럼의 결론은 이렇다. “동성애자 남성-이성애자 여성 간 우정은 인간의 성적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특징이며, 우연적인 특징이 아니라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는 진화적 결과물이다.”(465쪽)

친구들과 자조 섞인 말로 “말 통하고 멋진 남자는 다 게이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동성애를 세상은 왜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걸까. 앞의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만약 동성 간 욕구가 남성의 강압적인 성적 통제를 전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화했다면, 수많은 가부장적 문화들이 동성 간 성행동을 도덕적·사회적으로 맹렬하게 비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성 간 성행동을 금지하는 것은 여성과 생식에 대한 남성의 성적·사회적 통제 능력을 강화하는 또 다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선 ‘제22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한창이다. 장혜영 국회의원은 본회의에 무지개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고, 영국에선 동성애라는 이유로 강제 호르몬 주사를 맞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50파운드 지폐 인물로 선정됐다.

한편 광화문에선 지난해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감리회 교단으로부터 정직을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가 천막 농성 중이고,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도 순탄치 않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늦는 걸까, 왜 이리 후질까, 답답해하는 내게 과학이 속삭인다. 다양성 충만한 세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라고. 퀴어축제를 따로 열 필요가 없는 세상은 언젠가 반드시 올 거라고. 그것이 진화의 흐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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