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신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ㅣ“곰보빵, 소보로빵” 내 나이가 드러나는 걸까? 요새는 곰보빵이라는 명칭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가끔 말을 다급히 하다 보면 곰보빵이라는 말이 툭 나갈 때가 있다.

‘이런 낭패’하며 다시 소보로빵이라 정정하지만 말이 입속에 맴돌며 씁쓸하다. 곰보빵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된 그 날이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 엄마의 옷가게에서 틈틈이 일손을 도왔다. 주변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엄마 일손을 도와주는 딸을 기특하다며 예뻐해 주셨다.

비가 많이 오거나 날씨가 궂은날은 장사가 잘 안된다. 그런 날은 한 가게에 모여 함께 군것질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은 옆집 가게 사장님이 내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곰보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심스레 내게 “곰보빵이라 하지 말고 소보로빵이라고 말해”라고 말하며 앞집 가게를 가리켰다.

앞집 가게 사장님은 옛말로 마마, 천연두로 인해 얼굴에 눈에 띄는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내가 없을 때 속상함을 이야기했던 것 같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장님이 나에게 조심히 전한 것이다. 그때 아차 싶었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30년 전 그 당시에는 소보로빵을 곰보빵이라고 많이 사용했고 나도 그랬다. 곰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후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다시 한번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아직도 바꾸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이 많고 현재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라 생각하며 그냥 사용하는 말들도 많다.

무심하게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사회적 편견이 꽤 짙게 담긴 경우도 많다. 내가 모르고 습관적으로 쓰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장애인·노인·어린아이 등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언어도 많아서 바뀌어야 할 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말과 글의 힘으로 성차별 아웃(OUT)’이라는 주제로 인천여성회에선 올해 ‘내가 쓰고 있는 언어들 중 차별과 배제, 편견을 담고 있는 말들을 스스로 찾아내 이제는 쓰지 않는 말로 정리하고 선언하는 시간’을 갖는 프로젝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제 내가 쓰지 않는 말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일상언어 중 어떤 말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하며, 본인의 삶 속에서 그 말이 언제 어떻게 쓰였는지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수반하게 된다.

이렇게 언어 하나를 곱씹어 생각하고 스스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한발 한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성차별 의식은 여성이여도 아무리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어도 언제 어느 순간에 돌출되어 나올지 모른다. 그 정도로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의식이 언어다.

차별의 언어를 쓰지 말자는 단순명료한 캠페인을 넘어 자신의 약자에 차별·배제·편견의 마음과 생각들을 끄집어내고 고백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인식을 넘어 의식으로 가기 위한 진심 어린 실천이 될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지역성평등지수 시도별 수준에서 우리 지역 인천은 안타깝게도 중하위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여러분야에서의 대책과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성찰을 통해 나의 감수성을 확인하고 그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동반될 때 성평등한 도시 인천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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