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심혜진 시민기자│“은행이 없어졌어! 어디로 간 거야?”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계좌이체를 해야 하는데 늘 다니던 은행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그 은행의 행방을 나라고 알 리 없었다.

망연자실하던 엄마는 건물 한쪽 365자동화기계를 발견했다. 무사히 계좌이체를 마치는가 싶더니 또 다른 걱정이 엄마를 압박했다. 늘 통장으로 입출금을 해왔는데, 이제 새로운 통장을 어디에서 발급해야 하느냐는 거였다.

다른 지점에 가려면 40분 동안 걷거나 버스를 타야 했다. 한숨을 쉬는 엄마 목소리에 나는 안타까움보다는 짜증이 앞섰다. 기어코 이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어. 진작 인터넷뱅킹 가입해 두라니까...”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언제 어디서든 은행 일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6년 전 생긴 (카카오뱅크나 토스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은 정말 신세계였다. 인증서나 보안카드 없이 비밀번호만으로 조회와 송금이 가능할 뿐 아니라 예금 적금 가입과 해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신기하고 편했다.

그즈음부터 나는 엄마에게 인터넷뱅킹 가입을 권하고 또 권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은행들은 이윤을 이유로 점점 사라질 것이 뻔했고,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은행을 오가기 힘들어질 것 역시 당연했다.

게다가 엄마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도 보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는 등 신문물에 꽤 잘 적응 중이었다. 온전한 독립생활을 영위하려면 내 손으로, 내 뜻대로 돈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한데 엄마에겐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충실이 보조해줄 터였다.

그런데 엄마는 단번에 거부했다. 머리가 아파서 싫다는 거였다. 한 번 등록만 해놓으면 그렇게 편할 수 없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엄마는 완강했다. 나도 포기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엄마는 일흔두 살이 되었고 동네 단골 은행은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멀리 있는 은행까지 갈 거냐,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할 거냐, 인터넷뱅킹을 배울 거냐.

엄마 입에서 드디어 “배워보겠다”는 말이 나왔다. 의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일단 은행 회원가입부터 해야 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알파벳과 숫자, 특수문자 조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는 영어를 전혀 모른다. 시작부터 난관. 옆에서 돕는 나도 의욕이 마구 꺾인다.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엄마가 조그맣게 말했다.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실수할까 걱정이 되는 거야. 가끔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도 헷갈리는데. 인터넷 그거 안 하고 싶어.”

스마트폰 앞에서 쩔쩔매며 잔뜩 위축된 엄마를 보니 답답했던 마음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아니, 이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은행이 기계만 남겨 놓고 문 닫고 떠나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다양한 사정으로 사이버 세상에 진입할 수 없거나 하지 못한 사람들도 존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를 편하게 해 준 디지털 기술에 누군가는 맥없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잔인하다.

사라진 은행 앞에서 황당했던 경험을 어쩌면 엄마는 더 많은 곳에서 겪게 될 것이다. 마트의 자율계산대 사용법을 배워야 과일을 사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키오스크 터치법을 익혀야 할 순간이 오겠지. 아주 높은 확률로.

에스컬레이터가 있다고 해서 계단을 없애면 안 되듯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양립하는 방안이 산업 전반에 마련될 순 없을까. 이제껏 일궈온 엄마의 세상이 디지털 기술 때문에 좁아지고 낡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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