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최근 공군 내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여성 부사관이 성폭행과 강제 추행을 당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보도를 보면, 피해자는 추행 사실을 상관에게 알렸으나 상관은 이 일을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피해자를 회유·압박하며 수사를 지연시켰다.

또한, 수사에 착수한 이후 가해자는 가해 사실 일부를 부인했으며, 이후 자살 충동을 느낀 피해자는 성고충상담관에게 군 외부 상담을 요청했다. 피해자 상태 관련 상담소 의견을 제출받은 이후 군의 추가적 조치는 없었다. 피해자는 지난 21일 목숨을 끊었다.

사건 이후 <KBS>는 6월 2일 ‘100여 차례 성추행 때마다 신고 대신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를 인터뷰하고 관련 판결문을 조사 분석한 보도를 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중 80% 이상이 가해자가 상급자인 경우였으며, 남군과 여군 간 성범죄가 40.4%, 남군과 남군 간 성범죄가 59.6%로 나타났다.

이 지표에서 남군에 비해 여군의 숫자가 적다는 점, 군대 내 조직적 은폐 압박과 2차 가해 등의 우려로 범죄 사실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군대 내 성폭행과 성추행 사건, 그로 인한 자살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오 대위는 직속 상관인 소령으로부터 지속적 가혹 행위와 성추행을 당했다. 유가족과 군인권센터는 오 대위가 자살하게 된 구체적인 요인으로 소령의 성폭행을 지적했다.

2013년 11월 30일 <JTBC>는 ‘남녀 예외 없다… 군대 성폭력,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군 성폭행 실태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부대 뿐만 아니라 생도 시기의 성폭행 사례 역시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관학교 졸업생은 생도 시절 성폭행 사실을 보고했지만 은폐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성추행 피해자인 상병은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성추행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보도 내용들을 보면 여군의 자살과 관련해 ‘성별을 가리지 않는 상부에 의한 성폭행과 추행’을 강조한다. 이는 성폭행이 위계 구조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을 방증하지만 그로써 ‘여성’ 피해자의 층위가 삭제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여군은 2019년 장교와 부사관 기준 6.8%이다. 적은 비율 안에서 군대 내 이성간 성범죄가 40%를 점한다는 것은 여군 중 상당수가 범죄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즉 군대라는 위계 집단 안에서 성폭행은 여성 젠더를 특히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면서 위계 폭력으로서 성폭력에 접근해보자. 상명하복식 구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군체제에서 상관의 지시가 부조리하더라도 그것이 즉각 고발되기는 어렵다.

특히, 상관의 가해 사실을 고발하는 경우 피해자는 집단의 위신을 해쳤다는 명목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에 대한 압박도 받는다.

위의 사례들에서 가해자를 두둔하고 가해 사실을 은폐하도록 압박한 것,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 본격적인 조사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 이상 소요된 것은 체제의 폐쇄성 및 경직성에 기반한다.

이는 상부 명령이 절대적인 집단에서 폭행과 피해 사실이 고발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해당 집단 내부에서 공정하게 다뤄지기 어렵고 공론화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또한 고발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없다면 군내 폭행 사건은 개선될 여지가 적고 피해자를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넣으리란 추측도 가능하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진술은 무결하고 완전하지 않을 수 있기에 무조건 신뢰돼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경청된 이후 증거와 대조돼야 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아닌 수사 기관에서 증명해내야 할 일임은 물론이다.

무조건 신뢰가 아닌 경청과 증거의 수집은 실제 미국에서 벌어졌던 연쇄 강간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 갤브래이스가 세운 원칙이다. 이 사건을 다룬 보고서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는 성범죄에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또는 신뢰성은 많은 경우 의심받는다고 말한다.

보고서에 나온대로 허위 진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진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또 다른 담당 형사 헨더샷은 피해자의 진술에 균열이 있음을 이해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로 트라우마를 겪을 뿐만 아니라 강간이라는 특수한 범죄는 ‘여러 측면에서 기억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또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때로는 사건과 무관한데, 극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지 작용의 결과다.

요컨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인해 손상된 기억을 다시 맞추는 것은 온전히 피해자만의 몫이 아니며, 수사 기관은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증명할 것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그 왜곡의 지점들을 다시 정확한 위치로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성범죄를 사회적 안건으로 다루면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일을 반성하고 고찰하는 중이지만 그 논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 같다.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의제화되는 폐쇄성과 죽음으로도 불충분한 증명의 요구를 보라. 심판해야 할 것은 ‘온전한 피해자의 증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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