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학교도서관 활동가 양성교육 관람기] 학교도서관은 보물창고다 ② 초등학생 독서지도

주부 배아무개씨는 부평 ㅅ초등학교 도서관 학부모자원봉사자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도서관에 나가 책 정리와 아이들 지도를 한다. 그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하는데, 사실 아이 생각해서 한다. 내가 도서관에서 특별히 무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도서관에서 상당수 학부모들이 조를 이뤄 자원봉사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수와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청개구리어린이도서관과 달팽이도서관에서는 학교도서관 활동가 양성과정 ‘학교도서관은 보물창고다’를 진행하고 있다. 총10회로 이뤄진 강의 내용을 차례로 소개한다. 두 번째 강의는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의 ‘초등학생 독서지도’이다.

독서교육, 최소 13~15년 해야 효과 있어

▲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
‘도서관친구들’ 일을 하기 전, 초등학교에서 22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난 아이들과 일기쓰기와 독서교육을 재밌게 했다. 학기 초에 책이라면 치를 떨던 아이들이 가을 쯤 되면 소풍가방에 책을 넣어 간다. 그런데 독서교육 방식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적어도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읽고 쓰는 능력이 키워졌으니 사고력이 남다를 거라 생각했다. 6학년 공개수업을 참관했을 때였다. 사고력을 알 수 있는 건 바로 질문이다. 그런데 5학년 때 우리반이었던 아이들 질문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더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너무 이상했다.

그후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 책을 읽도록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고 책을 읽게 된 건 몇 천년 안 됐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소 13~15년 동안 꾸준히 독서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뇌가 책을 잘 받아들이는 쪽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고작 1년 독서교육을 받은 것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사고력이 발달한다는 것, 이것은 기적이라 할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독서교육을 잘 받은 경우는 다음 네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이다. 스스로 읽는가,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가, 최소한 30분은 푹 빠져 읽는가, 읽고 난 후 뒷정리도 스스로 하는가. 하지만 이런 아이는 극히 드물다. 특히 학년을 올라갈수록 이런 아이를 보기 힘들다. 난 아이들을 독서능력 별로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눈다.

첫 번째 그룹은 위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잘 읽는 아이들. 두 번째 그룹은, 지도를 잘 해주면 잘 읽게 될 아이들. 마지막으로 한 권도 못 읽는 아이들. 마지막 그룹엔 6학년인데 2~3학년 수준의 책 읽는 아이들도 포함된다. 중학생 쯤 되면 두 번째 그룹은 사라지고 첫 번째와 세 번째가 ‘10대 90’으로 나뉜다. 독서력은 제 수준에 맞는 책을 읽을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중1 책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어렵다. 읽고 싶어도 어려워서 못 읽는 것이다.

제대로 된 독서인구, 전체성인의 7%밖에 안 돼

우리나라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게 있다. 늘 책 읽기를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비율이 ‘7대 93’이었다. 중학생 비율과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10%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먼저 좋은 환경과 적절한 독서지도를 병행해야 한다. 집에 읽을거리가 충분해야하고,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발달 단계에 따른 적절한 독서지도가 필요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만6세까지는 독서교육이 거의 가정에서 이뤄진다. 아이가 책과 함께 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고정관념보다는 함께 하는 경험, 읽어보는 경험, 읽는 걸 듣는 경험 등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좋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능한 한 어려서부터, 단순한 것부터,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 책부터, 그리고 가능한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읽어주는 것이 좋다. 10대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다.

학교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면, 항상 아이에게 뭘 읽어주면 좋을지 물어봐라. 미리 준비한 책이 있다면 아이가 원하는 걸 읽어준 후 읽어주면 된다. 교육하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참 중요하다. 아이에게 이 책 저 책 함부로 읽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경우라도 동기 부여가 먼저다. 책 읽을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에겐 수만 가지 방법도 소용이 없다. 책읽기 기술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으니,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독후감, 아무나 쓰는 것 아냐…독서골든벨대회 하면 독서교육 물 건너 가

▲ 지난 12일 청개구리어린이도서관에서 열린 ‘학교도서관 지도자 양성과정 - 학교도서관은 보물창고다’에서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가 ‘초등학생 독서지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독서지도는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도서관 담당교사를 3년 동안 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 책 읽어 볼래?”하고 권하면 “책 읽고 독후감 써야 돼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이 독후감 쓰라고 하는 것에 질린 것이다. 그럼 난 “아니, 쓰지 마. 너희들은 아직 독후감 쓸 줄 몰라”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아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저 독후감 써서 상도 받았는데요”라고 말한다. “그게 독후감이냐? 독후감은 아무나 쓰는 것 아니야” 이러면 신기하게 아이가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난 “그런 시시한 독후감 쓰려고 책 읽는 데 시간 허비하지 말라”고 말을 해준다. 그렇게 서너 달 지나면, 아이가 물어본다. “선생님, 우린 도대체 언제 독후감 써요?”

이쯤 되면 독후활동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독후활동 중 독서골든벨과 독후감 쓰기는 정말 안 좋은 예이다. 특히 독서골든벨은 두 번 만 해도 아이에게 제대로 된 독서교육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지 않다. 책을 읽을 때 어떤 문제가 나올까만 생각하면서 읽기 때문이다. 행간이나 맥락을 이해하지도,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데,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까?

책 읽고 ‘보물상자 만들기’ 하면 토론․글쓰기 능력 길러져

가장 좋은 것은 토론이다. 하지만 토론하자고 하면 한 명도 안 모일 것이다. 그래서 그냥 책 모임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

먼저 읽고 싶은 책을 아이들과 함께 선정한다. 그 다음 책을 구매한 후 읽고 인상 깊은 부분에 밑줄을 그어 온다. 줄을 긋기 싫은 사람은 종이를 붙이면 된다. 정해진 날짜에 모여 밑줄 그은 부분 중 두 개만 골라서 낭독한다. 이른바 ‘밑줄 낭독회’를 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른 사람이 낭독한 부분도 책에 표시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 가서 책 전체 중에 정말 좋은 부분, 잊고 싶지 않은 부분을 공책에 옮겨 적는다. 난 이 공책을 ‘보물상자’라고 부른다. 가끔 아이들에게 보물상자의 한 구절을 읽어주기도 한다.

이런 독서모임을 꾸준히 하면 토론하는 능력과 글 쓰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어른들이 옆에서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 많아도 강요하거나 숙제처럼 해야 할 일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책 읽기를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는 어른들이 주변에 있고, 적절한 자극을 주고 동기 부여가 돼야한다. 책 읽기 기술도, 환경도 좋지만, 어른 스스로가 독서의 모범을 보여주는 일보다 더 강한 자극은 없다.

어른들이 스스로 책을 읽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에게 책 읽으란 얘기 하지 말기를 바란다. 책을 잘 읽었는지 내용 점검도 하지 마라.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만들고, 어른 스스로 책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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