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상담팀장

인천투데이│이주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면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만나는 활동을 했을 때는 4년 10개월의 비자가 끝나고, 또는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한 경우에는 거의 10년 동안의 한국생활을 끝내고 귀환하게 된다.

삶의 전성기를 보낸 한국에서의 삶이 비자가 끝남과 동시에 단절돼 본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면 마음이 착잡했다. 당시 자주 했던 대화 중에 하나는 ‘비자가 얼마나 남았죠?’였던 것 같다. 우리의 한국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해보는 대화 같은 거였다.

최근에는 난민 관련 비자의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다른 형태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이별은 예측하기 어렵고 너무도 갑작스럽게 느껴저서 충격과 상처로 다가올 때도 있다. 특히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이주를 결심한 난민들의 경우 가족과 함께 오거나 가족을 부른다.

때문에 난민 비자의 이주민들과의관계맺음은 한 개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들과의 관계가 되고, 그 이별도 한 개인이 아닌 가족들과의 이별이 되곤 한다.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서 한국에 온 난민가족들이 한국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고 또다른 이주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길 때, 옆에서 보기에는 매우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특히나 성인 혼자만 이주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 아닌, 한국에서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을 데리고 또 다른 피난처를 찾아서 떠나는 것을 볼 때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자녀들이 나름대로 한국에서 부모들의 세상과는 다른 그들의 세상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인도적 체류자인 사마와 후신(둘다 가명) 남매의 부모는 아버지는 한국에 남고 어머니와 자녀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은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사마는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업도 잘 참여하고,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집에서 혼자 모형 가발을 구매해 연습도 하는 학생이었다. 이 남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흡족하게 응원하던 나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 결심을 알았을 때는 이미 출국이 일주일 남은 상황이었다. 부모님과 이야기해보았지만 결심은 확고했다.

현재 출입국에선 코로나19를 이유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재입국허가’를 잘해주지 않는다. 거의 부모님이 사망했거나 사망에 가까운 상황이 아니고서야 재입국 허가를 해주고 있지 않다.

비자를 새로 발급 받는 것이 용이한 경우에는 감수하고 출국을 할 수 있지만, 난민들의 경우 일단 한국으로 입국을 해야 난민 비자를 신청할 수 있고, 현재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고 출국한다는 것은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을 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버지는 인도적 체류자로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은 단순노동에 한정돼 본인은 점점 나이 들기 때문에 일을 버티기가 힘들고, 소득은 가족이 먹고살기에 충분하지 않아 계속 빈곤한 상황이 지속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같은 인도적 체류자 비자인 자녀들이 성인이 되도 자신과 같은 일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내가 앓고 있는 향수병도 이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남편은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내와 자녀들은 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본인이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면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빈곤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가족들이 언제 다시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본국은 위험하지 않으냐’며 설득하는 나에게 그들은 자신들과 아이들의 비자가 바뀔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나는 지금 당장 정해진 것은 없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고 이런 불확실성은 이들 가족들을 지칠대로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사마와 후신의 어머니는 한국에서의 5년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본국으로 떠났다.

지난달 법무부는 미등록 아동들에게 비자를 부여하는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많은 미등록 아동들이 안전한 체류자격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출생해야 하고, 15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해야하고, 중·고등학교를 다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다.

이 발표는 체류자격이 불안정한 난민가족에게, 한국정부가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비자를 준다는 소문으로 돌았다. 때문에 한동안 난민들의 희망찬 질문을 받고 이들의 기대를 꺾는 답변을 해야 해서 괴로웠다.

이주배경의 아동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그렇게 제한을 달고, 유예돼야하는 것들인가. 우리가 사마와 후신 남매를 쫓아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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