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신문 한 구석의 짧은 기사를 읽다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찬 적이 있다. 내용인즉 이렇다. A는 부평지역의 유명한 폭력조직인 C파의 막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가입해 보니 조직의 미래가 불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A는 곧 경쟁 상대인 D파로 이적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점에 앉아 술을 마시는데 C파의 옛 선배 B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A는 자리에 앉아서 눈인사만 보냈다. B는 선배를 보고도 공손하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A에게 다가가 뺨을 한 대 때렸다. 화가 난 A는 폭행을 당했다며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B는 경찰에 붙잡혀 끌려간다. 대략 이런 사건이었다.

‘조폭이 선배한테 한 대 맞았다고 신고를 해?’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던 때다. 그 기사를 본 지가 벌써 20여 년은 지난 것 같다. 아마도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야인시대’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무렵이었을 거다. 조직폭력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의리와 협객이란 이미지가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던 시절이다.

되돌아보면, 그 즈음에 폭력조직도 시대의 전환기를 거치는 중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이들도 합종연횡을 거듭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선배들도 돈이 있어야 후배들을 돌보든가, 일이 있을 때 불러 모으든가 할 수 있으니, 이익이 있는 곳이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

C파와 D파는 그래도 부평지역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던 조직들이었다. 이후 이합집산을 거치며 와해되거나 다른 곳으로 흡수됐다. 현재 인천지역의 폭력조직들은 큰 규모의 것들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경찰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단속이 조폭들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인천에 남은 거대 조직 중 하나가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꼴망파다.

조직폭력단체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름대로 관례가 있는지, 내륙 지역은 거의 활동 지역의 지명을 이용하는 데 비해, 해안 쪽으로 갈수록 크라운이니 월드니 하면서 지역색을 벗어난다. 이 세계에도 학연이나 지연이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일 테니 그럴 것이다. 꼴망파도 신포동 일대에 거점을 두고 세력을 확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폭들의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폭력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경멸과 로망의 혼동은 여전하다. 영화나 드라마가 그런 이미지를 양산했고, 시대에 따라 세태를 반영하며 성장했다.

가령,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홍콩무협영화는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영웅본색’과 같은 느와르풍의 영화에 빠르게 잠식돼 갔다. 따지고 보면, 김두한과 같은 인물들에게 항상 따라붙는 의협이나 협객이란 말은 ‘정의’에 기초를 둔 단어인데, 무협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말이지, 이권을 얻겠다고 폭력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갖다 붙일 수식어는 아니다.

하여간, 성냥을 씹으며 총질을 해대는 주윤발은 아직 감성이 충만한 폭력의 시대를 보여줬다. 그것이 1990년대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을 거치면서 선 굵은 폭력으로 바뀌더니 2000년대의 야인시대까지 이어지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이후에 나온 ‘신세계’나 ‘범죄와의 전쟁’에는 말 많고 수완 좋은 폭력배들이 등장해서 기업화되는 조폭들의 모습이 소개되더니 이제 ‘빈센조’에서는 ‘싸움 잘하는 예쁜 남자’가 살인을 놀이로 즐긴다.

영화나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보려는 건 폭력조직에 대한 관대함과 오해다. 그리고 기울어진 관심이다. 우리나라 폭력조직에 대한 오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김두한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김두한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서 종로와 명동의 소위 ‘나와바리’ 다툼을 한 것에 불과할 텐데, 어느새 항일투사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광복 후 김두한의 ‘백색 테러’는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고, 인천에서 흑인시를 개척한 배인철의 죽음에도 배후에서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야인시대’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구마적이니 신마적이니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집기를 때려 부수며 싸워도 가만히 쳐다볼 수밖에 없던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이 무료로 조선 상인들을 ‘보호’해 줄 리도 없고, 유흥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금의 조폭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장군의 아들’류의 작품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는 조폭들의 의리나 배신, 이런 것들인데 거기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게 공권력과의 유착관계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더 파헤쳐 들어가 봐야 할 것은 조직원들 사이의 사적 관계가 아니라 바로 이 공권력과의 ‘검은 유착’관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폭력조직에 대한 소탕 작업이 진행되곤 했다. 5.16군사쿠데타 직후 화랑동지회의 이정재, 임화수 등을 사형시킨 것이나, 전두환 군부 세력이 삼청교육대를 운영하고,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 등이 그렇다.

정부가 폭력배들을 대거 검거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정치권이나 공권력과 폭력조직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사라졌다고 믿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파업이나 철거 현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용역업체가 등장하고, 간간이 경찰과의 유착설도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 ‘검은 유착’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시도는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조폭들 사이의 의리나 암투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얼마 전 ‘신포동 노래주점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신문기사의 대부분은 가해자가 과거 폭력조직의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에 집중됐다. 영화를 보듯이 조폭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보호관찰중이던 가해자가 운영하는 업장에서 신고가 들어갔는데 어떻게 무시될 수 있었는지, 그런 관리 시스템에 관한 문제를 심층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그래서 무섭다. 유사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간혹 ‘건달’이란 말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폭력배들은 노력이 아니라 무력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이다. 폭력이 오가는 곳에 영화 같은 낭만은 없다. 폭력의 시대는 언제 종식될 것인가.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