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평전│신병주│한겨레출판

인천투데이=이권우 시민기자(도서평론가)│여기저기서 드라마 이야기가 넘쳐난다. 얼마전 종영한 빈센조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가 최근에 시작한 모범택시도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야기를 펼쳐가는 방식이 확연히 차이 나는 두 작품이지만, 주제의식은 유사하다.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고, 그래서 약자나 소수자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지라 사적으로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두 드라마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드라마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대중의 정치적 무의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나 싶어서였다.

큰 기대를 걸고 출발한 현 정권은 후기로 올수록 개혁정신을 잃었다. 부동산 폭등으로 발목을 잡히더니, 급기야 서울과 부산 시장 자리를 야당에 빼앗겼다. 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던 시민은 분노했을 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엿보았다.

개혁열풍이 불 때 잠시 엎드려 있다가 상황이 바뀌면 당당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이 빼앗겼던 것을 되찾아온다.

역시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려운 모양이다, 강고한 기득권 세력을 정당하게 무너트릴 수는 없구나, 타락한 방법일지라도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면 정당한 것은 아닐까 등등의 생각을 대중은 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을 두 드라마가 정확히 짚어냈다 싶었다.

정말 개혁은 어려운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 집어든 책이 신병주의 <조광조 평전>이다.

조광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훈구파와 일대 대결을 벌이며 성리학적 세계관을 현실화하려는 개혁의지로 똘똘 뭉친 선비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만 비운의 개혁가. 평전을 읽어보니, 그리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광조 집안이 일종의 개국공신이었다는 점. 시간이 흐르면서 조광조 집안은 사림파가 됐다. 조광조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7세에 김굉필의 제자가 된 것이다. 훗날 ‘영남사림파의 사상이 조광조라는 매개인을 통해 중앙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반정 이후 중종의 지위는 취약했다. 이른바 정국공신의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다 반정 3인방이 죽으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건국정신에 걸맞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중종이 성균관에 간 이유는 그 개혁을 이끌어갈 깜냥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성실하게 도를 밝히고 항상 삼가는 태도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마음의 요체라고 주장한 조광조를 만난다. 중종의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사간원에 임용돼 대신들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은이는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한마디로 유교적 이념에 입각한 이상정치, 도덕정치의 실현이라 말한다. 이를 위해 조광조는 먼저 소격소를 혁파한다. 이 기관은 나라에서 천재지변이 있을 때 일월성신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도교의 성격이 강했다.

조광조와 중종은 이 사안에서 부딪힌다. 신권과 왕권이 충돌했으니, 기실 이미 이때부터 조광조의 몰락은 예고됐던 셈이다. 두 번째는 소학과 향약의 보급이었다. 특히 향약은 훈척들의 지방통제수단이었던 경제소나 유향소를 철폐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됐다.

기득권 세력이 조광조를 경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과거제의 보완제로 현량과를 신설했다. 일종의 추천제로 천거되면 논술시험격인 대책을 통과하면 등용됐다. 실제로 단 한번만 실시됐지만, 이 과정에서 세를 규합해 개혁적인 정책을 밀어붙였다.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파국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은 정국공신의 전면적인 개정 요구였다. 거의 3분의 2에 이르는 공신의 자격을 박탈하자는 것인데 이는 중종의 정통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일이었다.

중종은 이때 조광조 제거를 결심했으니, “근래 모든 일에 과격하여 평상하지 못하게 하므로 조정의 일이 많이 그르쳐졌다” “고서만을 알고 시의를 헤아리지 않아서 과격한 일이 많았으므로 부득이 죄 주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조광조는 행복한 개혁가였는지 모른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려고 과감히 도전하다 패배했으니 말이다. 오늘 지연된 정의와 사적 복수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한 도전도 이뤄지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부디 우물쭈물하다 허송세월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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