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인천 동구서 미얀마 민주화 투쟁 관련 강연회
'미얀마의 오늘과 우리의 연대' 주제로 에에띤 교수 강연

인천투데이=이형우 기자 l "한 때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렸던 미얀마가 군부독재의 횡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8888항쟁으로 투표권을 얻었지만 군부독재를 뿌리뽑진 못했다.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목숨걸고 싸울 것이다. 한국만큼 미얀마 투쟁에 연대하는 국가는 없다. 한국에 감사하다"

지난 29일 인천 동구마을교육협의회와 창영종합사회복지관 주최로 열린 ‘미얀마의 오늘과 우리의 연대’ 초청 강연회에서 미얀마 만달레이외국어대학교 에에띤(AYE AYE THIN) 부교수가 한 말이다.

이날 강연에는 미얀마 투쟁에 공감하는 동구지역 학생, 교사, 시민 등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발열 점검과 명부 작성을 마친 뒤 강연장에 입장시켰다.

강연에 앞서 임용렬 동구마을교육협의회 대표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한국 국민으로서 연대와 지지를 표한다"며 "뜻을 모으면 머지않아 미얀마에도 새로운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금 운동을 진행했던 동구 송림동 소재 서흥초등학교의 한 학생은 "얼마전 학교에서 미얀마의 아픈 역사를 배웠다"며 "미얀마에 직접 도움줄 순 없지만 모금을 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에에띤 부교수는 한국에 감사하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지난 29일 미림극장에서 '미얀마의 오늘과 우리의 연대'를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했다. 
지난 29일 미림극장에서 '미얀마의 오늘과 우리의 연대'를 주제로 강연회를 진행했다. 

“미얀마는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

미얀마는 한국보다 3배 넓다. 미얀마는 농사짓기 좋은 환경을 갖췄고 금과 루비, 석유 등 자원도 풍부하다. 하지만 미얀마는 한국보다 가난하다. 군부 독재 때문이다. 나라 지도자가 잘못하면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해도 가난한 나라가 된다.

미얀마는 한때 아시아의 첫 번째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나라였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는 1948년 독립하고 민주주의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미얀마는 아시아의 첫 번째 호랑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나라였다.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1962년 우네윈 장군은 첫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우네윈은 시위하는 대학생에게 총을 쏘고 여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1974년 우네윈 군부는 방송, 기업 등 산업시설을 국유화했다. 자신이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유흥과 사치를 즐기던 우네윈 때문에 미얀마는 1987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하는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우네윈 군부는 역사를 숨겼다. 역사 교육에 독립 과정을 빼는 등 우민화정책을 시행했다. 미얀마 지폐에는 독립운동한 아웅산 장군 얼굴이 있었는데 군부는 아웅산 얼굴을 지운 지폐를 발행했다.

미얀마를 지지하는 학생들.
미얀마를 지지하는 학생들.

“군부 독재 맞서 싸웠지만 민주화는 못 이뤄”

우네윈은 군부 이외에 정당을 금지하며 독재정권을 유지하려했지만 1988년 8월 8일 미얀마 시민들은 8888항쟁을 일으켰고 군부를 몰아냈다. 미얀마에 자유로운 다당제 선거가 열렸다.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지가 이끈 국민민주연맹(NLD)이 전체 492석 중 392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군부는 독재 정치를 위해 아웅산 수지가 외국에 살았다는 이유로 정치를 못하게 하고 그녀를 감금했으며 선거를 무효화했다. 우네윈의 뒤를 이어 우탄쉐 장군이 통치했다.

우탄쉐 군부는 대학생이 시위를 벌이자 모이지 못하게 모든 대학교를 도시 밖으로 쫓아냈다. 우탄쉐는 자신의 초등학생 자식을 가까운 학교에 보내기 위해 원래 대학교인 건물을 초등학교 건물로 바꿨다.

그밖에 우탄쉐는 외국과 교류를 차단하고 학교에서 협동·단결과 관련된 내용이나 활동을 금지시켰으며 시민들끼리 종교 갈등으로 싸우게 분란을 일으켰다.

미얀마 민주항쟁 시민 현황. (사진제공 정치범지원협회)
미얀마 민주항쟁 시민 현황. (사진제공 정치범지원협회)

“잠깐 찾아온 민주주의 그리고 현재”

군부는 국회의원 중 25%는 군부가 임명하고 남은 75% 의원들만 선거로 뽑을 수 있게 했다. 이런 불리한 환경에서도 NLD는 군부세력과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미얀마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긴 군부독재가 끝났다.

이 또한 잠시였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총선에서 패배하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 시민들은 군부독재 뿌리를 뽑기 위해 이번 투쟁을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이룰만 하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시는 군부가 정치에 나서지 못하게 목숨걸고 싸우고 있다.

4월 28일 기준으로 미얀마 시민 756명이 죽고, 4501명이 체포됐으며, 3449명이 구금됐고, 1237명이 수배중이다.

미얀마는 희망을 갖고 투쟁하고 있다. 은행에 있는 자신의 돈을 모두 빼 정부가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군부가 차단한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 서로 연대해 회선을 공유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냄비소리가 세계에 울려퍼지게 냄비시위를 했다. 군부 사람들 사진을 콘돔에 넣어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표현하는 시위도 했다. 신발 밑에 군부 사람들 사진이 붙어있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군부가 개학을 5월로 미루자 어린 학생들이 군부 밑에서 공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시위에 동참했다.

가운데 미얀마 만달레이외국어대학교 AYE AYE THIN 부교수.
가운데 미얀마 만달레이외국어대학교 AYE AYE THIN 부교수.

“한국만큼 미얀마 투쟁에 연대하는 국가 없어”

한국이 미얀마를 이해하고 적극 도와주고 있다. 미얀마 상황은 광주민주화운동과 상황이 비슷해서인 것 같다.

지난 1일 초등학생 대상으로 비슷한 강의를 진행했다. 이를 듣고 한 학생이 생일날 받은 용돈을 선뜻 기부했다. 큰 감동을 받았다.

한국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미얀마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SNS에 한국과 우리는 가족이라고 할 만큼 고맙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미얀마 내부 활동이 통제된 상태라 많은 미얀마 국민들이 미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 국가들이 한국만큼 적극적이진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활동가를 후원하고, 미얀마 군부 지원 기업 불매운동을 하는 등 한국만큼 미얀마 투쟁에 연대하는 국가는 없다. 한국에게 감사하고 쭉 미얀마 민주주의를 응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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