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기 송암예술아카데미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
5편 김학균 서예협회 고문 '판화가 김상유' 강의

인천투데이=이형우 기자 l 한국은 인쇄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은 각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이다. ‘상정고금예문’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이용한 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은 최초 한글 금속 활자본인 ‘월인천강지곡’을 동으로 만든 활자로 인쇄했다. 이는 독일 구텐베르크 인쇄술보다 앞선 기술이다. 그밖에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등 활자도 한국 인쇄의 깊은 역사를 증명해준다.

인쇄술이 예술 영역으로 넘어가며 판화로 탈바꿈했다. 한국 인쇄 역사를 이어 판화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 있다. 김상유 선생이다.

김학균 서예협회 고문이 송암예술아카데미가 주관한 ‘인천 근현대 예술인의 삶’에 출연해 한국 판화의 길을 개척한 김상유 선생의 삶을 얘기했다. 아래는 강의 내용 일부를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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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유의 동판화 작품.
김상유의 동판화 작품.

“이북 출생이지만 인천 정착 후 작품활동 펼쳐”

김상유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평양에서 졸업했다. 1949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중퇴라는 설도 있다)했다. 졸업 후 그는 인천 동산중학교에 미술과 영어를 담당하는 교사로 부임하며 인천에 자리잡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상유는 종군화가로 입대했다. 제대 후 1954년 다시 동산중학교로 돌아갔다.

1958년 ‘한국판화가협회’가 탄생하고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판화과목이 생기며 한국에 판화가 자리잡았다. 이때부터 김상유는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상유 목판화 작품.

“독학으로 동판화를 익혀 미술 통념을 깨다”

그 판화가로 한국에서 미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전·후다. 김상유는 비슷한 시기에 앵포르멜 미술(프랑스 중심의 서정적 추상회화 경향)에 근접하며 인정받기 시작한다.

김상유는 일반 사람들의 미술 통념을 깨기 위해 동판화에 접근했다. 동판화는 다른 판화에 비해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고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그가 동판화를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익혔다는 점이다.

김상유는 새로운 기법으로 판화를 선보였다. 물은 확산하는 성질이, 아교는 응집하는 성질이 있다. 그는 화선지에 엷은 연두색을 색칠하고 아교를 떨어뜨려 추상적인 번짐을 유도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또 그는 동판에 강한 산을 부어 부식이 일어나는 것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추상 효과를 만들었다. 녹슨 판은 오묘하고 절묘한 효과를 만들었다.

김상유가 현대미술 판화부분에서 이름난 작가로 활약한 이유는 남다른 지적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문명사회 모순에 괴리를 느껴 이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정신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김상유는 1958년 처음으로 국제판화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1963년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1968년 인천 은성다방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1963년 열었던 개인전을 바탕으로 해외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해외 주목을 받은 그는 도쿄, 오사카 등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기 시작해 세계로 확대했다. 도쿄국제판화전(1968),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판화전(1968), 이탈리아 칼피 국제판화 트리엔날레(1969), 상파울로 국제판화전(1971) 등 국제 판화전에 초대 받아 출품했다.

유화와 목판화를 접목하다.
유화와 목판화를 접목하다.

“유화와 목판화를 접목하다”

김상유는 1970년 경기미술협회 이사 직책을 내려놓고 인천 중구 송학동 자택에 칩거해 판화에 몰두했다. 1970년 국제판화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닫혀진 출구’를 보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것을 엿볼수 있다.

이후 1971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1회 국제판화 비엔날레에 김상유는 또 한번 대상을 수상하며 위상을 높였다.

김상유는 점차 동판화를 지양하고 목판화로 작업했다. 그는 동양스러운, 한국스러운 작품을 목판화로 표현했다. 이 영향으로 한국은 목판화의 부흥기를 맞이한다.

김상유는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그는 목판화 작업을 유화로 확대했다. 그는 유화 재료를 유화답지 않은 장르에 접목해 유형을 파괴하는 등 초월적 작업에 몰입했다.

2002년 3월 21일 자택에 칩거해 작품에 몰두하던 김상유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김상유 작품은 기교 없는 기교의 맛이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지만 절제된 미학이 담겨있다.

인천 중구 신포동 거리를 걷다가 어느 양장점에 있는 그림을 보고 멈춰 섰다. 알고보니 김상유 판화 작품이였다. 완전히 매료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 그림을 보고 지냈다. 그의 작품엔 지독한 문인 정신이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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