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나윤경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 ‘시민적 의무’를 알리고자 만든 영상이 최근 화두에 올랐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성인지 감수성이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시민의 덕목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영상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은 남성을 곧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비판하는 쪽의 주장을 살펴 말하건대 실제 범죄 양상의 성비가 높은 확률로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으로 보고되는 현실이 가로놓여있기는 하나 젠더 폭력이 반드시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의 구도 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윤경 원장이 의도했던 바대로 누구나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살리기 위해 조금 다른 개념을 고안해볼 수도 있겠다.

젠더-폭력에서 ‘폭력’ 자체를 근절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젠더) 폭력이 발생하는 궁극적 원인이 ‘가부장제’라는 관습과 제도에 있다고 보았기에 ‘가부장제 폭력’이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단, 벨 훅스가 ‘폭력’을 겨냥하는 과정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코 젠더를 지우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폭력’이라는 말을 앞세워 젠더간 위계 차이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발생을 지우고 ‘인간 폭력’으로 환원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폭력’이라는 상황 발생이 기본적으로 구체적 맥락의 위계·권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맥락’ 안에 어떠한 요소들이 개입됐는지 소거해버린 채로 폭력을 말할 수는 없다.

이를 고려할 때 영상에서 시민사회에서의 폭력과 젠더 감수성의 관계를 구체화할 수 있는 개념을 섬세하게 검토했어야 할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젠더 폭력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오는 2021년의 시점에 한층 더 깊이 있게 물어져야 하는 것은 ‘가해자 남성’이라는 표현의 표면적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강제성을 행사할 수 있는 특정한 맥락이 발생할 때 현저하게 많은 경우 폭력적 내용을 요구하는 위치에 특정 젠더가 놓인다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논점화할 때에야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 젠더-계급적 격차가 어떤 연유로 발생하고 있는지, 또 젠더 간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해의 비대칭성이 무엇에 의해 초래되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논점화의 방법과 관련해 ‘사회적 약자’로 일컬어질 수 있을 사회 계층(교포 노동자 여성)을 피해자로 비유하는 방식이나, ‘갑을 관계’를 대응쌍으로 삼아 폭력의 가해자/피해자 구도 속에 배치하는 것도 재검토해야 할 부분이다.

시민의 덕목으로 길러져야 하는 것은 이들을 ‘약자로 보기’가 아닌, ‘약자로 만들지 않는 환경 만들기’이지 않은가.

영상의 주제가 오늘날 시민 윤리란 곧 (젠더-)폭력 생산의 구조를 바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면 이러한 비유는 오히려 폭력 구도의 전형성 안에 특정 계층을 재배치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시민의 새 덕목으로 ‘누가 어떻게 폭력의 주체가 되는가’를 논의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조금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

- 영상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 https://bit.ly/2QpnCCt

- 한겨레 보도 '누군가의 안전과 누군가의 언짢음, 뭐가 더 중요한가'
https://bit.ly/3tXaX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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