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지역아동센터 청소년밴드 ‘골목길’

“그 사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죠”

그들은 ‘그 사태’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때는 2011년 10월, 십정동 열우물마을잔치가 열리던 날. 청소년밴드 ‘골목길’ 멤버들이 무대에 올랐다. 마을 주민 100여명이 촘촘히 무대를 둘러싸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를 노래는 4곡. 앙코르곡까지 미리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연주를 할수록 관객 반응이 이상했다. 세 곡을 마쳤을 때, 정적을 깨고 한 할아버지가 외쳤다. “아니 왜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 노래만 하는 거야? 한국 노래를 해야지. 이거야 원. 쯧쯧” 더 이상 노래를 할 수 없어 앙코르곡을 남겨둔 채 무대를 내려왔다.

“앙코르곡은 가요였거든요. 싸이의 ‘챔피언’을 준비했는데 못 부르고 내려왔어요” 김호진(20ㆍ대학생)군은 그때를 회상하며 “아직도 아쉽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드나들어 안 오면 허전해

▲ 해님지역아동센터 강헌구 센터장(윗줄 오른쪽 두번째)과 청소년밴드 ‘골목길’ 멤버들.
‘골목길’은 십정동 해님지역아동센터(센터장 강헌구ㆍ이하 해님방) 고등부 청소년들로 이뤄진 밴드이다. 해님방에는 고등학교 학습 과정이 없어, 고등학생들은 따로 주1회 모임을 열고 있다. 모임에서 지속적으로 할 만한 프로그램을 찾던 이들에게 강헌구 센터장이 밴드를 해볼 것을 제안했다. 아이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복권기금 문화 나눔 사업에 선정돼 드럼과 기타 등 악기를 제공받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강사가 지원됐다.

주중에는 각자 학교에 다니느라 모여서 연습할 시간이 없다. 주로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에 서너 시간 연습한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시험기간이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매주 모였다. 2년이 지나자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고3이 됐다. 입시공부를 하느라 더 이상 밴드를 하기 어려워져 그 자리를 중학교 졸업생들이 채웠다.

“중학교 때부터 선배들 공연하고 연습하는 걸 봤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죠” 일렉(=전자) 기타를 치는 신정환(17)군은 지난 1월부터 함께 했다. 멤버 대부분이 초등학교 때부터 해님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으니 이곳에 오지 않으면 허전하다. 유년시절부터 함께 해 이젠 날마다 얼굴을 봐도 지겹지 않은,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이다.

세 번째 오른 무대에서 팝송에 할아버지 호통

멤버 대부분은 이전에 악기를 만져본 적이 거의 없다. 강 센터장은 지금까지 밴드가 이어져 공연까지 하는 것이 대견하고 신기하단다. “과연 소리가 날 것인지, 의문이었어요. 이전에 악기를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거든요. 6월부터 연습을 했는데 그해 12월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강 센터장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연습시간이 늘어가면서 소리가 모여 합주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 같이 처음으로 한 곡을 끝까지 연주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감동적인 순간이었죠”라며 열심히 따라온 아이들에게 고마워했다.

‘골목길’은 그동안 무대에 세 번 올랐다. 부평문화사랑방에서 가족과 친구,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 첫 공연을 열었다. “반응이 좋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이래서 밴드를 하는구나 싶었어요” 호진군은 베이스기타를 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흐뭇하다.

이듬해에는 청천동 뫼골공원에서 열린 단오제 행사에서 이들을 초대했다. 첫 공연만큼 호응이 좋진 않았지만 큰 실수 없이 마쳤다. 문제는 지난 10월에 열린 마을잔치였다. 외국 곡 세 곡을 연달아 듣던 할아버지가 호통을 쳐, 준비한 곡을 모두 연주하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오게 된 것.

“우리가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소리를 언제 또 들어보겠어요? 뭐, 좋은 경험이에요” 밴드 리더인 김재석(19)군이 너스레를 떤다. 겉으론 웃지만 리더로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이 일이 있은 후, 관객에 따라 다양한 곡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지금은 가요도 몇 곡 골라 연습하고 있다. 그날의 소란이 밴드에 변화를 가져다준 셈이다.

변화는 멤버들에게도 찾아왔다.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또 다른 누군가는 반 강제로 밴드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음악과 악기가 각자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밴드를 안 했다면 주말에 심심하니까 텔레비전 보거나 게임했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 받았을 때 기타 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무의미했던 주말 시간을 밴드로 채울 수 있어 좋아요” “배워서 자랑할 수 있잖아요” “애들이랑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겨서 좋아요”

이들에겐 야무진 꿈이 있다. ‘골목길 밴드’ 이름을 건 단독공연을 여는 것. “우리만을 위한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어요. 아마 다 같은 생각일 걸요?” 멤버 일곱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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