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여성연대 회원들은 31일 후보자들에게 여성들이 원하는 정책을 알려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벌였다

3월 31일 오후 2시, 부평문화의거리에 보라색 피켓과 스카프 등 악세서리를 걸친 사람들 50여명이 등장했다. 인천여성연대 소속 회원들로 인천여성노동자회ㆍ인천여성민우회ㆍ인천여성의전화ㆍ인천와이더블유시에이(YWCA)ㆍ인천여성회ㆍ전국여성노동조합인천지부ㆍ인권희망강강술래 등 여성단체 7곳에서 모인 이들이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열흘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투표할 것과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공약을 펼친 후보자를 선택할 것을 독려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든 것은 ‘여성이 행복한 정치,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라는 설문조사. 시민들은 일자리ㆍ육아와 보육ㆍ성폭력 방지ㆍ여성 정치 참여ㆍ성차별 철폐 등 다섯 가지 이슈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선택해 스티커를 붙였다.

인천여성연대 관계자는 “여성에게 다섯 가지 주제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후보자들에게 여성들이 원하는 정책을 알려주기 위해 퍼포먼스를 벌였다”며 “앞으로도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꾸준히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3월 29일, 부평아트하우스에서는 지역문화 정책의제 설정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는데, 발제자 20여명이 참여해 토론을 펼쳤다. 이처럼 시민사회에서 일어나는 ‘시민 정치운동’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 낙천낙선운동이나 당선ㆍ지지운동 등으로 나타나던 시민 정치운동이 정책과 공약 평가를 거쳐 공약 제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모습이다.

시민사회가 선거에 개입해온 과정을 살펴보면, 첫 시작은 ‘공명선거운동’이었다. 1987년 개헌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됐지만, 여전히 부정선거가 만연했다. 1991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가 발족해 선거 부정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창구를 운영했다. 이 활동은 부정선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공정한 선거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으로 2000년 총선연대에서 ‘낙천낙선운동’을 펼쳤다. 총선연대에는 시민사회단체 1056개가 참여했는데, 당시 부적격 정치인 86명을 선정해 이들의 퇴출 사유를 밝혔다. 이 가운데 59명(68.6%)이 낙선해, 낙천낙선운동이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활동은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를 일부 개정하는 성과도 낳았다.

2004년 총선에서는 낙천낙선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시민단체가 ‘당선운동’ 전략을 내세웠다. 이들은 낙선운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낙선 대상자가 아닌 대안적 인물을 제시하는 당선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지후보 54명 가운데 23명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얻었지만, 지지후보 선출 기준에 대한 논란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심판자의 역할에서 선거 주체로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로

한편, 1990년대부터 등장한 시민사회의 ‘후보출마운동’이 2002년 지방선거에서 본격적으로 발동했다. 후보출마운동은 외부에서 선거를 평가하고 기준을 제시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선거의 주체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성숙한 시민운동의 형태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론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시민사회 내부에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0년 지방선거는 친환경무상급식 공약이 시민들 사이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정책운동’이 유권자운동의 주요한 형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전에도 정책과 공약을 중심에 둔 시민사회의 선거 개입이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주로 환경 파괴나 토건(토목과 건축)개발 위주의 헛된 공약을 가려내는 정도였다.

그러나 2010년 ‘친환경무상급식’이라는 한 가지 의제 아래 전국 2000여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연대한 이 활동은 시민정치운동이 정책평가와 더불어 ‘공약채택운동’으로까지 진화하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나아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인천 시민사회는 야당들이 야권연대 즉 야권후보단일화를 이루는 데 적극 나섰으며, 정책 협약의 주체가 됐다. 이는 올해 총선으로까지 이어졌다.

참여연대 시민감시팀 황영민 간사는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발행한 ‘시민과세계’에서 논단 ‘유권자운동의 진화’를 통해 “심판자의 역할로는 선거에 출마한 정당과 후보자에게 정책 수용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선거 개입의 정도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유권자운동이 단체 중심의 활동에서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치 참여로 ‘주체의 확장’이 되고 있으며 ‘가치’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권력의 구성을 요구하는 ‘정치적 기획’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