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 인천산곡고교 교사

인천투데이│다른 직장과 달리 학교는 3월이 사실상 한 해의 첫 달이다보니, 이맘 때 한해살이에 관한 문서나 자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데, 그 특성 상 대입과 불가분이기에 교무실 책상 위에 놓인 올해 대입의 윤곽을 정리한 교육청 자료를 살펴 보게 됐다.

언뜻 봐도 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이른바 주요 대학은 지난해와 달리 학생부 교과 전형이 늘어났다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학생부 교과 전형은 생활기록부의 ‘교과 학습 발달 상황(흔히 내신 성적이라고 하는)’을 중심에 놓고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여기에 몇몇 대학은 면접 고사 점수를 넣기도 하지만···

교과 성적 외에도 동아리 활동이나 진로 또는 봉사 활동 따위도 함께 대입 전형의 요소로 반영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과는 다르다.

언뜻 학생부 교과 전형에선 고등학교 내신 성적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 같아 보이지만, 많은 대학들은 학생부 교과 전형에 수능 최저 기준을 조건으로 한다. 고등학교 성적 관리 못지 않게 수능 최저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비판도 제법 있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이 고교 교육의 정상화에 어느 정도 기여한 면이 있다는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제법 크다. 그 점에 대해선 같은 생각이다. 학생들이 순수한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자기 이해 관계에 따라 비교과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며 삐딱하게 볼 수도 있고 사실상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학과 공부 일변도를 벗어나 미래 진로와 관련있는 여러 체험활동을 경험하게 해 좀 더 학교 현장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계층 간 지역 간 격차를 다소 완화해줘, 소외된 학생들의 대학 진학 기회를 넓혀줬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그런데 몇 년 전 유명 인사 자제의 대학 입학과정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면서, 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교육부는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그 방안의 핵심은 수능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정시 전형의 확대, 생활기록부의 정성평가적 요소 축소 등이다.

그 방안의 폭풍우가 올해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것이다. 주요 대학들의 2022학년도 대입 전형안을 보면, 12년 만에 정시 전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생활기록부 교과 성적과 수능 최저 조건을 결합한 전형이 확대됐다.

몇 년 전 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대입에서 수능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70%라고 주장했는데, 몇 년 전에 비해 수능 영향력이 더 커진 셈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에누리가 없는 수능이 훨씬 공정하지 않느냐며 정시 전형 확대를 반길 뿐 아니라 심지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능으로만 대학생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수능이 과연 100% 객관적이고 공정한 잣대일까. 공신력있는 여러 교육 통계가 말해주고 있듯이, 수능은 집안이 어느 정도 살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제법 있으며 제도권 교육에 유리한 문화적 배경을 갖추고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도구이다.

그렇다고 수능 위주 또는 수능 최저 전형이 차지하는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정도를 넘어 과거 본고사나 학력고사 시절처럼 학교 교육을 파행적으로 몰고 계층별 지역별 격차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재미있는 것은 교육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조치로 대입에서 수능의 힘이 매우 세졌지만, 정작 교육부는 고교 학점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고교 학점제를 도입해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다수의 선택 과목 평가도 절대평가에 가까운 ‘성취 평가제’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입에서 정량 평가는 강화되고 있다.

이런 모순된 방향의 정책을 시행하는 와중에 수능 강화의 부담으로 학생은 학생대로 힘들고 학교 교육의 파행화로 교사는 교사대로 힘든, 계층 간 학력 대물림이 고착화하는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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